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솔향 Mar 06. 2024

엄마도 영화 볼 줄 아는 여자야

편성준의 숙제 3 - 10분 에세이( 엄마와 있었던 일)

지난 12월, 영화 <서울의 봄>이 누적 관객 천만 진입 직전이라고 떠들썩했다. 어서 내가 보고 천만을 만들어 줘야겠다 싶어서 삐져있는 사춘기 막내딸의 기분도 풀어 줄 겸 남편과 함께 영화관에 가기로 했다. 출발해야 하는데 아이는 아직도 잠옷 바람이다. “빨리 준비해. 3시 영화니까 집에서 2시 반에는 나가야 해. 10분 남았어!” “나 정치 영화 싫은데.” “어제는 본다고 했잖아. 갑자기 왜 그래. 예매도 다 해놨어.” 으이그, 속이 뒤집힌다. 뭔가에 수가 틀려 있는 아이랑 실랑이하고 있는데 엄마가 방문을 열고 가만히 한마디 했다. “영화 보러 가냐? 초원이랑 다 같이 가면 나도 보고 싶은디......”    

 

0.5초쯤 정적이 흘렀다. 당황스럽다. 머릿속에 여러 생각이 오갔다. 엄마도 영화를 보고 싶었구나. 가끔 외식이나 여행에 모시고 가기는 하지만 왜 그동안 같이 영화 볼 생각은 한 번도 못 했지? 어렵지 않은 일인데. 아주 가끔이지만 엄마 빼고 가족과 영화관 데이트를 했던 게 떠올랐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것 같다는 기분이 뭔지 알 것 같았다.    

 

엄마는 큰애와 둘째도 가까이 살면서 돌봐주었는데 생각지도 않던 늦둥이 막내가 태어나면서부터는 아예 우리 집에 들어와 함께 살고 있다. 막내가 올해 중학교에 입학하니 벌써 13년이 지났고, 그녀도 우리 나이로 일흔다섯이 되었다. 가끔 우리끼리 살고 싶기도 하고, 엄마도 이 꼴 저 꼴 안 보고 혼자 사는 게 더 편할 수도 있겠다 싶지만 ‘아이들도 다 크고 이제 엄마는 필요 없으니 그만 엄마 집으로 들어가세요.’ 이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사실 엄마를 부양한다고 볼 수도 없다. 지금도 집안일을 도와주고 있어 게으른 나는 편하게 직장 생활하고 있다. 엄마도 생활비 아끼고 용돈도 정당하고 마음 편하게 받으니 서로 상부상조하는 악어와 악어새 같은 관계라고 해야 할까?     


엄마는 속상한 것을 잘 표현하지 않고 잔소리도 거의 하지 않는다. 인품이 그렇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딸과 사위의 눈치가 보이겠지. 그게 가끔 애잔하지만 사람 참 안 바뀐다. 나는 엄마랑 손 붙잡고 나란히 걷는다던가 다정하게 이야기 들어주는 살가운 딸은 아니다. 남동생 셋과 자라서 그런지 무뚝뚝한 편인 데다 밖에서 체력을 소진하고 들어오면 입을 다물고 무표정이 된다. 그런 내게 서운해하는 걸 알면서도 아이 셋과 싸우느라 지쳤는지 엄마까지 살뜰히 챙길 여유가 없었다. 아니다. 다 핑계다. 엄마는 힘든 나를 도와주는 사람쯤으로 여겼나 보다.     

 

처음으로 엄마와 영화를 보고 그녀의 감상평을 들으며 반성 좀 했다. 엄마도 영화 볼 줄 안다. 낭만과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하루를 사니, 예술을 느끼니 어쩌니 하며 내 삶을 가꾸려는 허영가득했지 더 늦기 전에 엄마에게도 조금 나누려는 생각을 못 했다. 기독교 방송이나 종편 정치 프로그램을 자주 보지만 걸러 듣고 비판하며 제대로 된 생각을 하는 진보적인 그녀다. 미안해서 오랜만에 목포에 찾아오는 연극 <친정엄마와 2박 3일>을 VIP 좌석으로 예매했다. 둘이 보면 어색해서 딸들 것까지 네 장. 연신 비싸서 아깝다고는 해도 휴대폰에 대고 남동생에게 자랑하는 목소리가 들떴다. 둘러보니 관객석에 나이 지긋한 분들이 많다.  

   

우리 나이로든 윤석열 나이로든 이제 쉰은 넘었다. 이제 나도 철들 나이다. 여전히 쑥스럽지만 조금씩 바뀌어야지.  ‘엄마, 미안해요. 젊은 시절을 자식 위해 다 바쳤는데 나이 들어 쪼그라들고 서럽다고 느끼지 않게 잘할게요. 앞으로 영화는 자주 모시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