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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 Feb 28. 2024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

편성준의 숙제 2 - 10분 에세이(여행의 이유)

우리나라에서 제일 행복도가 높은 지역이 어딘지 아는가? 어느 시골쯤으로 여기저기 생각해 보다가 답을 듣고는 무릎을 쳤다.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란다. 사람들이 얼마나 여행하는 걸 행복하게 여기는지 알 수 있다. 앞으로 하고 싶은 것 계획을 세워보라고 해도 여행은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돈이 없는 나는 인천공항이 아니어도 좋으니 광주공항, 아니 목포여객선 터미널에라도 자주 가봤으면.  

   

3월이 가장 정신없지만 그에 못지않게 바쁜 2월이 지나가고 있다. 백조가 우아함을 유지하기 위해 호수 아래에서 엄청난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처럼 3월 새 학기가 문제없이 진행되도록 방학에도 바쁘게 준비하는 이들이 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출근 준비해서 나가기 바쁘고, 직장에서 시간이 언제 가는지 모르게 눈코 뜰 새 없이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다가 퇴근한다. 사춘기 아이의 민감한 투정과 짜증에 대처하고, 저녁 먹고 좀 쓰러져 쉬면 금세 잘 시간이 다가온다. 멍하니 영상이나 드라마를 보다가 이건 좀 아니다 싶어 책을 집어 든다. 역시나 책은 눈을 감기는 마법을 부려 편안한 잠을 이루게 해 준다. 이 반복되는 일상이 유지되기에 벌어서 먹고, 살아간다. 가끔, 일상이 지루하지 않게 그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는다. 아니, 찾아야 한다. 시간 내서 친구를 만나고, 가까운 산에 가고, 아이랑 미술관, 영화관도 다녀 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이 권태로워질 때쯤이 여행이 필요한 때다. 아! 지금인데. 그때처럼.     


코로나 시국 끝물 무렵인 21년 1월 겨울방학, 완도의 작은 초등학교에서 근무하고 있을 때다. 특수와 보건 선생님이 둘이서 제주 여행을 갔다. 시간이 안 맞아서 부러워하다 그들의 여행 첫날 저녁에 맥주를 준비해서 줌(zoom)으로 만나기로 했다. 교무를 맡아 출근하고 있던 조 선생과 나는 각자 관사 방, 완도 사람 박 선생은 자기 집, 특수와 보건은 제주 호텔에서 접속해서 온라인으로 술과 수다 파티를 벌였다. 그러다가 너희들도 당장 내일 제주로 오라는 농담이 나오는가 싶더니 완도-제주행 배편을 예매하고 있는 지경에 이르렀다. 다른 사람들이야 방학이라 문제 될 것이 없지만 학교엔 관리자 중 한 명은 근무해야 하고, 이번 주는 교장 선생님이 못 나오는 터라 내 근무 당번이었다. 나는 쫄보라 안 된다고 했지만 그들이 교감씩이나 돼서 금요일 하루 연가 낼 배짱도 없느냐며 찔러대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예매에 동의하고 말았다. 다음 날, 교장 선생님께 피치 못하게 연가를 내야 하는데 사유는 말씀드리기가 좀 곤란하다고 연락드렸다.    

  

내 최초의 일탈 여행은 그렇게 신날 수가 없었다. ‘처음’이나 ‘새로움’은 인생을 풍부하게 살고픈 내 바람과도 맞아떨어진다. 걱정거리를 내려놓고 떠나는 자유로움, 낯선 곳에 대한 렘, 일탈이라는 새로운 경험으로 한껏 충전하고 난 뒤에 돌아온 일상은 전과는 조금은 다르게 느껴졌다. 다시 달릴 준비가 되었다.


적당한 불행이 있어야 행복을 더 가치 있게 느끼듯, 힘겹거나 권태로운 일상이 있기에 여행의 의미도 빛을 발한다. 난 열심히, 성실하게 일했으니 다시 한번 일탈을 꿈꿀 자격이 있다. 편성준! 만나러 떠나야겠다. 마지막 '봄바람 에세이' 수업이 서울 '성북동 소행성' 그의 집에서  있다. 이번에는 방학도 아닌데 어쩌지? 에라, 모르겠다. 눈 딱 감고 한 번 더 말해야지.  "교장 선생님, 수요일에 피치  못하게 오전부터 조퇴해야 하는데 사유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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