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끼오우우우!” 길게도 뽑아 재낀다. 으이구, 저놈의 달구새끼. 잡아서 백숙을 해 먹던가 해야지. 시댁에서 눕는 밤마다 잠을 설친다. 내게 제일 소중한 잠. 실패하면 하루를 망친다. 시도 때도 없이 귀에 대고 울어대는 통에 시댁에 다니러 오는 것까지 싫어질 지경이다. 새벽 세 시건 네 시건 시간 개념이 없다. 도대체 누가 첫닭이 울면 동이 튼다고 했는가? 새벽 두세 시에 트는 동도 있느냔 말이다.
우리 식구가 사용하는 건넛방 바로 옆에 자리한 길쭉한 화단에서 수탉 둘, 암탉 셋이 산다. 초등학생이었던 조카가 호기심으로 부화기에서 얻은 병아리를 아파트에서는 키울 데가 마땅치 않아 시골에 맡겼다. 마당이나 대문 밖으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울타리 삼아 그물망을 치고, 한쪽에는 비를 피할 수 있게 판자로 지붕을 얹어 얼기설기 닭장을 지었다. 수탉 둘 중 센 녀석은 시도 때도 없이 자신의 위세를 목청껏 내어 지르고, 초라하고 볼품없는 다른 녀석은 쿠르륵 하고 목쉰 소리를 쥐어짠다. 어쩌다가 한번 약한 놈이 힘을 내어 덤벼보기도 했지만 어림없다. 당장 응징이 따른다. 매섭게 달려들어 날카로운 부리로 머리며 목을 찍어 피를 봬주고 나서, 녀석은 꼿꼿이 쳐든 고개를 이쪽저쪽으로 돌려대며 암탉들 사이를 느긋하게 거닌다. 저 잔인한 놈. 그 꼴이 비위에 거슬린다.
“저 놈으로 하죠. 뭐 알도 못 낳는데 저 시끄러운 수탉을 잡아요.” 형님네까지 여름휴가를 맞아 모였을 때 내 심기를 건드린 죄로 녀석이 지목됐다. 좀 미안하긴 하지만 어쩔 수 없구나. 불쌍하다는 이유로 찌질한 녀석은 청일점으로 살아 남았다. 이 녀석, 이제 기 좀 펴고 살겠지?
어머나! 저 귀청이 따갑게 질러 대는 소리를 정녕 그 변변치 못했던 수탉이 내었단 말인가? 한 달여 만에 마주한 녀석은 위풍당당했다. 목구멍에 문제가 있어서 기어들어가게 피시식거리는 줄 알았더니, 이야! 아주 목청이 득음한 소리꾼에 비할 만했다. 신수도 훤해졌다.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노릇한다더니 그새 바뀐 분위기가 놀랍도다. 당하기만 했던 녀석을 떠올리니 잠깐이나마 뿌듯한 기분이 스쳤지만 이내 잠 못 드는 밤은 다시 시작되었다. 으아악! 진짜 환장허겄네.
가만 보니, 이 녀석은 그전 놈보다 더 심한 게 아닌가? 소리만 더 우렁찬 게 아니고, 미친 듯이 암탉들을 쫓아다니며 벼슬과 목털을 마구 쪼아대는 난폭함까지 보이고 있었다.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풀기라도 하듯이. “아니, 저것이 너무 사나워서 암탉들을 못 살게 굴고, 모이 주러 가면 나한테까지 달겨들어서 쪼아댄단 말이다. 무서워서 달걀 꺼내러도 못 가겄다.” 어머니를 상하게 한 게 한두 번이 아니란다. 어머니는 손목과 팔에 난 상처를 보여 주며 하소연했다. 이런, 너도 안 되겠구나. 그런데 수탉이 없으면 암탉이 알을 못 낳는 게 아닐까?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괜찮단다. 암탉이 알을 낳는 것은 짝짓기와는 별도로 이루어지는데 수컷이 없으면 단지 유정란을 만들지 못 한단다. 다행이다. 주인까지 못 알아보는, 요 배은망덕한 놈은 몸보신이 필요한 동네 할아버지께 건네졌다.
아뿔사!이게 어찌 된 일인가? 다행이 아니었다. 다시 한 달이 지나서 찾은 닭장에 닭이 모두 사라졌다! “어머니, 닭 다 어디 갔어요?” 똥그래진 눈으로 물었다. “고양이가 다 물어 죽였다.”
머리를 한 대 얻어맞는 것 같다는 느낌이 바로 이건가? 그렇구나.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구나. 하나님이 쓸모없는 걸 만들었을 리가 없잖아. 교만하고 미련한 자에게 지혜는 늘 한 발짝 뒤에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