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라, 우리가 해야 하는 첫 번째 프로그램이 뭐냐면.” 거기까지 말하고는 한 박자 쉰다. 목소리가 ‘솔’,‘라’를 넘어 ‘시’ 언저리까지 올라갔다. 큭큭큭, 웃음이 비집고 나온다. 이 언니, 여전해. 다짜고짜 ‘프로그램’이라니. 너무 귀엽잖아. “네일이야! 좋지?” 푸하하하, 이번엔 터져 나왔다. 내 못생긴 손에 네일? “뭐야 뭐야, 좋아 좋아.” 예상 밖의 전개에 도착하기 전부터 붕 뜬다. 역시 재밌는 여자야. 케이티엑스(KTX)에서 내리기 10분 전, 세종에 사는 그녀를 만나러 간다. 무려 1박 2일로.
2002년, 서른이 되자마자 닷새 만에 결혼했다. 6년간 닦아 놨던 수도권 생활을 포기하고 함께 지내려고 여수까지 내려왔더니 남편은 멀리 고흥에 발령이 나 버렸다. 큰아이도 덜컥 들어섰다. 신혼에 남편도 없는 낯선 곳에서 임신한 몸으로 혼자 살아야 하는 상황이라니. 쪼잔하게 바가지 같은 건 긁지 않고 대범하게 받아들였다. 난 아량이 넓은 여자니까. 새 학교에서 만난 언니는 똑똑하고 유쾌하고 카리스마 쩔고 행동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게 딱 내 스타일이었다. 만나자마자 죽이 척척 맞아 절친이 되었다. 월드컵키즈라 불리는 큰아이를 가을에 낳았고, 이듬해에 또 둘째를 가졌다. 이번엔 둘이서 쌍둥이처럼 배를 내밀고 다녔다. 태교에 좋다길래 같이 뭘 많이 배웠다. 수채화는 할 만했고 십자수는 고역이었다.
큰애를 친정엄마에게 맡겼다. 남편과 순천에서 애틋하게 재회해서 목포로 가 주말을 보내는 일정이 계속됐다. 일요일 밤, 혹은 월요일 새벽에 아이를 떼 놓고 떠날 때마다 울었다. 다행히 둘째가 태어나기 전에 목포로 발령이 났다. 운이 좋았다. 갑자기 옮기는 터라 아파트 전세금 지불에 문제가 생겼다. 살던 곳에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아서다. 언니가 선뜻 빌려주었다. 쉽지 않은 일이다. 겨우 2년 알고 지낸 사람에게 큰돈을 내놓는다는 것은. 그런 여자다. 돈 빌려줬다고 그녀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그 후로 여수-목포에서 10년, 언니가 세종으로 2014년도에 이사 갔으니 세종-목포에서 또다시 10년이 지났다. 지지고 볶으며 하루하루 각자 살아내기 바빴다. 그 20년간 얼굴을 마주한 걸로만 치자면 서너 번이나 되려나? 자주 만나고 살아야만 깊은 관계는 아니다. 속상하거나 기쁘거나 누구에게도 말 못 할 수치스러운 일이 생기거나 가슴을 흔드는 고민이 있을 때 떠오르는 사람은 언니이므로, 이런 게 깊은 거다.
둘이 나란히 앉아 하양이 많이 섞인 레몬색으로 손톱을 치장한다. 청록과 민트의 중간쯤인 빛깔로 가운뎃손가락에 포인트를 준다. 엄지는 두 색깔의 짬뽕이다. 이번에도 쌍둥이처럼 똑같이 했다. 단지 언니 손톱은 길고 크고, 내 건 짧고 동그랗다. ‘우정 반지’도 아니고, ‘우정 손톱’인가? “이건 언니가 선물하는 거야.” 계산한다. “고맙습니다!” 돈 때문에 좋아하는 건 아니라고 다시 한번 강조하겠다.
소고기 샤브샤브를 배 터지게 먹고 나서, 죽까지 야무지게 끓여 입가심을 했다. 야경이 끝내준다는 ‘플래져’라는 카페 49층 창가에 자리 잡고 앉았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서울 롯데타워 야경 못지않다. 보고 싶었던 사람이랑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수많은 별빛이 깜빡거리는 듯한 황홀한 밤풍경을 바라보았다. 용을 닮았지만 겉멋만 부린 비효율의 극치라는 정부세종청사 건물이 길고 구불구불하게 기어가고, 도시가 파노라마처럼 넓게 펼쳐져 따뜻한빛을 내뿜고 있다. 아메리카노 6천 원. 비쌀 만하다. 오랫동안 품을 추억 값을 따지면 오히려 싸다. 아르바이트생이 사진을 찍어주었다. 역시 젊은이에게 부탁해야 혀. 살짝 기울여 미소 짓고 있는 두 여자 뒤로 반짝이는 것들이 보석 같다. 세상엔 아름다운 게 많다.맘에 든다.
오후 두 시 반에 만나서 숙소에 누워서까지 수다는 끊이지 않는다. 자식들 하나하나 꼽아가며 예전과 지금 상태가 어떠한지 세세하게 내놓는다. 나를 기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나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의 철학적 문제부터 갱년기, 남편 흉, 직장 생활로 건너갔다가 운동, 취미, 심지어 피부관리에까지 이른다. 무슨 말을 해도 채신머리 걱정할 필요가 없다. 못난 거 다 꺼내 보여 줘도 괜찮다. 언니는 작년까지 갱년기 우울증에 시달렸는데 올해는 괜찮아졌단다. 다들 그렇구나.“나는 빨리 죽고 싶어. 얘들이 슬픔을 감당하기 좀 나아질 때만 되면. 사는 게 재밌지가 않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는다. 이건 또 뭔 소리냐. 나는 이 좋은 세상에서 오래오래 살 수 있을 때까지 버티고 싶은데. 걱정돼서 이 언니가 뭘 하면 재밌을지 이것저것 해법을 내놓다가 문득 깨달았다. 기준이 높아 만족을 못 해서 하는 소리다. 빨리 죽고 싶은 사람이 필라테스, 펜드로잉을 저리 열심히 하고, 아침저녁으로 빼먹지 않고 피부마사지를 15분씩이나 정성스럽게 해댈 순 없지. 깜짝이야. 깜빡 속을 뻔했다. “언니는 욕심이 너무 많아.” 한 소리했다. "얘들이 슬픔을 감당하려면 언니 한 백살은 되야겄네." 언니도 깔깔 웃으며 “그런가?” 한다.
그동안 그린 어반 스케치 작품을 보여줬는데 전문 화가 솜씨 같다. 부럽다. 나보다 백번 부지런히 잘살고 있다. 작품을 액자에 넣어 보내준다고 했다. 이야깃거리가 마르지 않고 샘물처럼 퐁퐁 솟아난다. 이번엔 어두운 것보다 밝은 얘기를 많이 했다. 어려운 터널을 많이 지나와서 이제는 햇살 보는 일만 남았다. 싱싱함은 사라졌어도 언니는 오늘이 가장 젊을 때라고 했다. 어느덧 새벽이다. 너무 말똥말똥해 잠이 안 온다.
아침에 언니를 출근시키고 눈 좀 붙였다가 11시에 한옥 펜션에서 나왔다. 근처 투썸 플레이스를 찾아냈다. 여긴 북극이네. 고구마 라떼를 따뜻한 걸로 시킬걸. 배낭에 넣어 온 헬렌 켈러의 수필 <<사흘만 볼 수 있다면>>을 읽었다. 유명세에 비해 그녀의 아름다운 문체를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은 적다고 하길래 빌린 것이다. 쉰셋의 헬렌은 사흘만 볼 수 있다면 그 첫째 날에 다정함과 친절함으로 자신의 삶을 가치 있게 만들어 준 사람들을 볼 거란다. 본다는 것은 가장 큰 축복이라고 했다. 나를 보려고 언니가 조퇴하고 12시에 왔다. 고기 구워 점심을 푸짐하게 먹었다. 기분이 고기압일 때도 역시 고기 앞이지. 여행은 먹는 거라고! 수변공원 금강뷰 카페 ‘213 비엔나’에서 강을 바라보며 마지막 수다 타임까지 아주 빵빵하게 즐겼다. 아줌마라서 말이 많은 게 아니고, 서로 좋아하니까 할 말이 많은 거라고 주장하는 바이다.
기차는 1시간 50분 만에 나를 목포에 내려놓았다. 세상 참 빨라졌다. 현관문을 들어서니 막내가 째려본다. “어디 갔다 왔어? 나 밥 뭐 먹어?” 오냐. 이제 충전 만땅으로 하고 왔으니 너의 짜증을 받을 준비가 되었다. 자, 드루와!
‘별거 안 했는데 만나는 자체가 넘 좋아. 그리고 너가 즐겁다고 하니 더 좋아. 활력이 생기는 것 같아. 우리 종종 만나자. 낼 출근 잘하고.’ 언니가 카톡을 보냈다. 언니 맘이 내 맘이랑께. 이제 우리 시간 되잖아. 그리운 사람은 보고 살아야 한다고 누가 그러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