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그라나다의 그 궁전에서 나는 물의 소리를 들었다.
미풍도 없는 하늘에 수직으로 떨어지는 한 방울의 이슬은 누구의 발자취인가.
그 이슬이 호수 표면에 일으키는 왕관 모양의 파문은 누구의 형상인가.
오랜 침묵끝에 이슬 방울 한개가 호수 표면에 남기는 그 청아한 소리는 누구의 음성인가.
알함브라. 알함브라 궁전이 추억. 그 추억이 만드는 소리가 나에겐 그렇다.
손가락이 키타자판위에서 추는 춤과
그 춤사위가 만들어 내는 소리가 그렇다.
스페인으로 가는 비행기. 2023년 6월. 그 비행기 안에서 나는 그 소리를 들었다. 기타소리. 알함브라 궁전의 소리. 추억의 소리.
환청인가. 혹은 실제로 어디선가 나는 소리인가.
그리고 나는 그라나다에서 심각하게 고민했다.
알함브라를 물리적 실체로 확인 할 것인가. 아니면 심리적 실체로 내 영혼 속에서 숨쉬고 살게 할 것인가.
나는 궁전에 들어가야 하는가. 아니면 여기서 돌아가야 하는가.
한 낮이 지나고, 그림자가 길어질 즈음에 알함브라를 떠났다.
스페인의 한 시인은 알함브라 궁전을 이렇게 노래한다.
Grata la voz del agua
a quien abrumaron negras arenas,
grato el frescor del mármol,
grata la música del limonero.
Grata la voz del agua
a quien abrumaron negras arenas.
Grato el jazmín.
Siempre es la primera vez.
(En el alto crepúsculo
un águila se eleva
sin fin, sin término, sin anhelo.)
즐거운 것은 물의 소리,
검은 모래에 짓눌렸던 이에게,
즐거운 것은 대리석의 서늘함,
즐거운 것은 레몬나무의 음악.
즐거운 것은 물의 소리,
검은 모래에 짓눌렸던 이에게.
즐거운 것은 자스민.
언제나 그것은 처음과 같다.
(저녁의 높은 하늘,
한 마리 독수리가 솟구쳐 오른다,
끝도 없고, 목적도 없고, 갈망도 없이.)
Jorge Luis Borges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의 알함브라 "Alhambra"
즐거운 것은 물의 소리,
검은 모래에 짓눌렸던 이에게,
검은 모래에 짓눌려서 잃어버렸었다.
그런데, 소리 물의 소리는 나를 다시 즐겁게 만든다.
그리고 그 즐거움은 저녁의 높은 하늘로 날아 오른다.
즐거움은 목적도 갈망도 없이 그냥 솟구쳐 오른다. 독수리처럼,
알함브라 궁전을 나설때 즈음엔 나도 그렇게 된다.
스페인 시인처럼 나도 그렇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