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서있다, 가로등에 등을 기대고 버스정거장을 바라보면서. . .
파리는 밤이 되면 낮보다 더 많은 말을 건넨다.
가로등이 하나둘 켜질 때마다
도시는 무언가를 속삭인다.
조용한 위로일 수도,
사라진 목소리의 메아리일 수도.
그는 그 불빛 아래에 서 있었다.
의자도 벤치도 아닌,
단단한 가로등 기둥에 등을 기대어.
도시의 따뜻한 숨결 같은 주황빛 불이
그의 옆얼굴을 어루만졌다.
그 밤, 그는 불빛에 기대어
"Il pleure dans mon cœur
Comme il pleut sur la ville."
— 폴 베를렌, 「Il pleure dans mon cœur」가운데 일부.
봉파르나스 버스정거장에서
92번 버스는 이미 여러대가 지나쳤다.
남자는
가로등에 등을 기대고 서서
미동도 없이 버스정거장을 바라보고 있다.
가을이 오면
버스 정거장에서 만나자고.
겨울이 오기 전에 빠리에서. . .
누군가와 약속일지 모른다.
서울의 밤에도 가을이 스믈스믈 몰려오고 있다.
기억을 더듬게 된다.
가을이 오면 그때 다시 만나자고 한 약속은 없는지.
좀 기다릴만 하다.
그때가 가을이라면
서울이든 빠리이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