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미르 고원의 황금나무는 내가 될 수 없다.
파미르. 세상의 지붕이다. 가도가도 끝이 없다. 산이다.
키르기즈스탄을 여행할 때이다.
수도 비슈케크를 새벽에 떠나 하루 종일 산 꼭대기를 달렸다.
그리고 호수. 고원에 이런 호수가 있을 수 있다고 상상할 수 없이 큰 호수를 만났다.
이식쿨 호수이다.
말을 탔다
말을 타고 호숫가를 달렸다.
그리고 거기서 키가 큰 나무들을 만났다.
파미르에, 호숫가에. 키가 큰 나무는 황금색이었다.
그 황금색 나무 사이로 해가 진다.
태양도 황금색이다.
나는 그 나무가 된다.
금방 파미르에 뿌리를 내리고, 호수를 바라보며, 햇빛이 눈 부신다
나는 황금색이다.
나는 나무이다. 나무처럼 느끼고 사고하고 침묵한다.
그러나
나는 그 나무가 될 수 있지만
그 나무는 내가 될 수 없다.
나무는 존재이고
나는 실존이기 때문이다.
모든 실존은 존재가 될 수 있지만
모든 존재가 실존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존재. Being은 있다는 상태이다.
일반적이다.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존재한다. 나무도 돌도 사람도 존재한다.
실존 Existence은 인간 중심적이고 주관적이다.
실존은 인간과 같이 의식 자유 선택 책임을 가진 존재이다.
나는 나무가 될 수 있지만, 나무는 내가 될 수 없다. 그 이유는
나무도 나처럼 생명이 있지만. 자유 의식 선택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나그네는 그 아름다운 곳에 서 있는 아름다운 생명을 본다.
존재 만으로도 아름다운 나무를 본다.
존재이다.
나는 실존이다. 단순한 존재가 아니다.
존재 앞에 선 실존은 미안해 진다. 나는 존재보다 우월한가. 존엄한가.
실존인 나는 존재인 나무만큼 아름다운가.
사유하고 반성한다.
14 Nov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