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가을에, 지하철 8호선 빅토르 위고 역에서.

낙엽지는 세느강변 어느 벤치에 앉아서 레미제라블을 읽다.

by B CHOI


빠리의 아침 공기가 늘 그렇다.

어디선가는 바게트 굽는 냄새가 나는 듯 하기도하고. 어디선가는 커피 냄새가 나는 듯 하다.

그리고 그 사이에 느슨한 낭만의 냄새가 섞여 있다.


빠리 지하철 8호선은 세느강 지하를 지난다.

콩코드 광장이나 에펠탑 그리고 베르사이유로 가려면 이 열차를 타야한다.


장발장을 거기에서 만났다.

다부진 어깨. 당당하게 그를 지탱하는 두 다리.

사랑하는 여인 코제트와 함께 그는 지하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빠리와 레미제라블과 빅토르 위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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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리

그것은 허상이 아니다.
그것은 거리의 냄새, 허기와 희망, 혁명과 체념, 죄와 구원이 뒤엉켜 만들어낸 거대한 인류의 초상이다.


지하철 돌계단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빠리의 지하에 숨어 있던 레미제라블이 슬며시 모습을 들어낸다. 다정하게 악수를 청한다.


빠리엔 코제트가 사랑에 빠진 젊은 혁명가 마리우스 퐁메르시가 참여했던 바리게이트 전투의 현장이 있다.

장발장이 사랑하는 여인의 연인을 목숨을 걸고 구해내서 도피하던 그 지하 하수구 옆으로 지하철이 달린다.


빠리는 기억한다.

자유와 위선과 선동과 저항 그리고 그것들이 흘린 피의 흔적이 남아 있다.

빵과 눈물과 후회와 애착이 지하에 흐른다.


그런데 왠지 여기선 혁명도 낭만처럼 느껴진다.




레 미제라블

장발장의 무거운 발걸음은 이 도시의 돌길 위를 걸었고, 코제트의 눈동자는 세상의 잔혹함과 아름다움이 교차하는 지점을 비추었다.


그리고 레미제라블은

파리를 단순한 배경이 아닌, 독자들의 심리적 고향으로 만들었다.
도시는 숨쉬고 울고, 절망하고 다시 일어섰다.


빠리를 걷기전에 꼭.
레 미제라블을 읽어야 한다.


가급적이면 책은 그냥 가져가는 것이 좋다. 지금도 가을이면 낙엽지는 세느강변 벤치엔 홀로 책을 읽는 파리지앵들이 많다. 그 사이에 거기 빈 자리에 앉아서 서울에서 가져간 레미제라블을 읽을 것을 권한다.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덥고 나서

8호선 지하철을 타면

그 열차는 빅토르 위고역을 지난다.




빅토르 위고역

아주 딴판이다.

빠리여행은 레미제라블을 읽기 전과 후가 다르다. 그냥 다른 것이 아니라 완전히 다르다. 빠리가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지하철역에 가만히 서 있으면, 위고의 문장들이 벽면의 벽돌들 틈새로 흘러 나온다.

세상은 고통받는 자들에 의해 지탱된다고 말한다.


지하철은 달린다.

도시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인간은 여전히 불안하며,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사랑하고, 누군가는 절망하고, 누군가는 싸우고 있다.


빠리여. 빅토르위고여.

아 가을이여. 너 꺼지지 않는 불꽃이여.

투쟁이여.








17 Nov 2025

월, 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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