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없이 노동만으로 아파트를 살수 있는 동네에 갔었다.
졸업후에 한번도 소식이 없다가
오랜만에 동창을 만난다면
어디에 사느냐고 묻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다
무엇을 하는지, 어떻게 살았는지 시시콜콜 묻는 것은 시간낭비이다.
어느 동네 어느 아파트에 사는가가
그 사람의 현재 상황을 설명해 주는 가장 현실적인 기준이 된다.
서울의 부동산 가격에 대한 거품을 이야기 하는 사람은 이제 없다.
지난 10년간 우리의 경제성장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였지만
서울의 아파트 가격은 지역에 따라 서너배가 올랐다
강남이라면 이제 국민평형이 50억원 이라고 해도 놀랍지 않다.
노동으로 저축해서 모을 수 있는 돈이 아니다.
부동산이 오르면
노동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축소된다.
월급은 아무리 모아도 집을 살 수 없다. 자산의 격차가 노동의 격차보다 훨씬 커졌다.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는 사회에서는 노동의 가치는 상대적으로 축소된다. 월급을 아무리 아껴도 집값 상승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면, 노동은 더 이상 미래를 열어주는 수단이 아닌 생존을 간신히 유지하는 도구가 된다. 이렇게 자산 가격이 경제의 중심을 차지하게 되면 근로를 통한 계층 이동이라는 사회적 약속은 무너지고, 노동 가치는 부동산이라는 구조 속에서 점점 무력해 진다.
2017년인가보다
중앙아시아의 구 소련 지역을 여행하다가 시골 마을에 오래된 아파트와 낡은 자동차를 보았다.
서울하고 비교하면 안 된다. 파미르 고원 지대이다. 우리로 치면 강원도 아주 시골 산속 마을이다.
그런 점을 감안 하더라도 허접하다.
여기가 내가 꿈꾸던 곳이다. 투기가 없고, 노동만 있는 마을이다.
아파트가 비싸지 않은 사회. 노동만으로 대출 없이 아파트를 살 수 있는 곳의 모습이다.
그런데 화려하지 않다.
나그네는 마을의 속내를 모른다. 그냥 겉모습으로만 보자면, 자본주의에 찌든 나의 눈에는 이 동네가 그리 흡족하지는 않다.
정치나 경제는 행복을 주지 않는다.
인간의 존엄성. 행복 그리고 가치는
선동이나 이론에 있지 않다.
내 마음에 있다. 가치와 행복은 역시 주관적이다. 인생관의 문제이다.
22 Nov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