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라노는 한 두 번이 아니다. 여러 번 가 보았다. 익숙하다.
골목길에 들어 섰다. 그리고
길을 잃었다.
밀라노의 도시계획은 종교적이다.
문을 열고 나서면 문 앞에 길이다 그리고 그 길 끝에는 대개 성당이 있다,
도시 어디든지 성당이 보인다.
성당의 모양은 조금씨 다르다.
그 성당이 이정표가 된다. 등대이다. 길을 잃기가 쉽지 않다.
문제는 성당이 보이지 않는 작은 골목길에 들어 섰을 때이다.
도시의 골목은 그 도시만의 독특한 공간이다. 대로에서 보이지 않는 도시의 맨살. 화장 안 한 얼굴이 보인다.
동네 야채가게 앞을 지나서. 베란다에 걸린 빨래들도 보고. 자전거 타는 할머니도 만나고, 헌책방 앞에 잠시 머물다 보면 길을 잃게 된다.
탈출은 간단하다.
구글을 켜면 된다.
그런데 그냥 길 잃음을 즐김도 해 볼만 하다.
다리가 아플 때까지, 그 골목을 걸어 볼 만하다.
걷다 보면,
이태리의 골목길에 나처럼 길을 잃은 또 다른 여행자도 만나게 된다.
그 사람도 나 처럼 길을 잃고, 그냥 그 길 잃음을 인정하며, 사진도 찍으며 골목을 즐기고 있는 것 같다.
AI 또는 다른 수단들이 분 단위로 여행 계획을 짜 주는 세상에
그냥 타박타박 걷다가 길을 잃다니, 이는 매우 어리석은 것처럼 여겨 질 수도 있다.
그러나
유럽 여행은 신선함이 없다.
솔직해 지자면, 유럽 여행은 다 알고 떠나는 여행이다. 현지에서 증명사진을 찍기 위한 몸부림이다.
파리 개선문과 상제리제거리. 몽마르뜨 언덕. 발세로나의 성가족 성당. 로렐라이의 인어공주. 율프라우의 몽블랑. 어디가 가성비 있는 호텔인지. 어디가 맛집인지. 어디서는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하는지. . 이미 다 안다. 가기전에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다 보고 간다.
그러나 골목은 다르다.
나의 여행가운데 기억에 남는 것들이
화려한 관광명소들이 아니라.
길을 잃은 곳의 기억들이다. 그리고 그 기억은 흑백사진처럼
간결하다.
나는 또 여행을 갈 것이다.
그리고 길을 잃을 것이다.
20 Jan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