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의는 없다. 단지 한국에서 하던 대로 했을 뿐이다. 그런데 쫒겨난다.
엘 칼라파테에서 생긴 일
남미를 우습게 보면 안 된다.
특히 칠레,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브라질 같은 나라들이 그렇다.
유럽 문화권이다. 부자가 망해도 삼대는 간다. 한때 선진국 대열에 섰던 나라들이다. 그 여유와 낭만이 곳곳에 남아 있다.
찾아보면 보석 같은 가치들이 일상에 지천으로 깔려 있다. 즐길만하다.
아르헨티나의 파타고니아 관문인 엘 칼라파테는 모레노 빙하로 가는 관문이다.
세계의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다.
도시는 작지만 깔끔하고 기품이 있다.
인터넷에는 여기에서 가스불이 구워낸 어린 돼지 바비큐를 꼭 먹어야 한다고 안내한다.
다운타운에 바닷가로 가는 길목에 이 식당에 몇 개 있다. 쇼 케이스에 어린 돼지가 구워지고 있다.
그분들이 식당에 들어설 때부터 아슬아슬한 마음이 있었다.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그분들은 노 부부였다. 한국인이다. 부부가 남미를 여행하고 있는 것이다. 다정해 보인다.
그런데 식당을 들어서자 두리번거리더니
거침없이 창가 테이블에 앉는다.
그리고 가방과 모자를 벗어 옆 의자에 놓고는
웨이터를 부르신다.
낭패다.
식당 안에는 나 말고도 현지인들과 여행자들이 몇 명 더 있었다.
기다려!. 앉아!
우리는 그렇다. 식당에 들어가면 먼저 홀 안을 스캔한다. 그리고 맘에 드는 자리를 골라 거기에 가서 앉는다.
외국은 그렇지 않다.
식당에 대한 개념이 다르다. 식당은 내 집이 아니다. 타인 소유의 공간이다. 거기에 들어가려면 소유주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타인 소유의 공간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이다.
식당에 맘대로 들어가면 안 된다. 식당 문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
식당의 종업원과 눈이 마주친다면 들어가도 좋으냐고 물어야 한다. 아마 종업원은 일행이 몇 명이 몇 명 묻고는 자리를 안내할 것이다.
안내해 준 자리가 맘에 들지 않으면 다른 테이블을 달라고 해도 된다.
만일 허락 없이 식당에 들어선다면.
식당 웨이터는 불쾌해할 것이다.
안 쫓겨나면 다행이다. 메뉴를 달라고 하면, 그 웨이터는 분명히 메뉴판을 테이블 위에 던지고 갈 것이다.
혹은 자리에 앉아 아무리 기다려도 웨이터가 주문을 받으러 오지 않을지도 모르다.
인종차별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니다. 내가 무례한 것이다.
동남아에서는 통할지 모른다.
하지만 아프리카만 가도 유럽식 예절을 지켜야 한다.
라트비아에서의 기억
동유럽의 가을은 일찍 찾아온다.
낙엽이 지는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를 여행할 때이다. 라트비아는 에스토니아 바로 옆에 있는 나라이다. 그러나 리가의 거리는 탈린의 거리와 사뭇 다르다. 같은 점은 두 도시 모두 그림같이 아름답다는 점이다.
낙엽이 아름다운 리가 시내 골목길을 걷다가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창가에 자리를 잡고 식사를 주문했다.
작은 로컬식당이다. 손님은 거의가 현지인들이다.
한 동양인 일행이 불쑥 들어오더니 맘대로 자리에 앉는다.
잠시 후 웨이터가 오더니 손님들에게 일어나라고 한다. 그리고 그들을 다시 식당 입구로 안내한다.
그리고 그 동양인들에게 외투를 벗으라고 한다. 소지품과 함께 식당입구 보관하는 곳에 걸어주고는 다시 테이블로 안내한다.
유럽의 식당은 좁다. 테이블에 외투나 소지품을 놓을 공간이 없다.
그래서 도시 변두리의 작은 식당도 식당 입구에 외투와 소지품을 보관하도록 하는 곳이 많다.
예절을 지키지 않은 댓가
한 인기가 많은 여행 유튜버의 여행 동영상을 보다가
그 유튜버가 동유럽의 한 식당에서 인종차별을 당했다고 분노하는 것을 보았다.
자리에 앉았는데 30분이 지났는데도 주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 그 유튜버는 그 식당에서 식사를 하지 못하고 스스로 나와야 했다.
그 동영상을 자세히 돌려보았다.
식당에 들어가 거침없이 자리에 앉는다. 식당에서 동영상을 찍겠다는 허락을 받는 장면이 안 나온다.
그렇게 남의 나라에 가서 식당을 이용하다가는 출입금지 당하지 않음이 다행이다.
실제로 파리나 유럽 인기 여행지엔 한국인을 사절하는 식당들이 있다고 들었다.
남미도 크게 다르지 않다.
남미 문화의 뿌리는 유럽이다.
제발 남미에 가거든, 그게 인디오들이 경영하는 로컬식당이라고 하더라도 문 열고 쓱 들어가서 맘대로 자리에 앉지 말기 바란다.
손님 대접 못 받는다.
동남아 하고는 다르다.
기다려. 앉아가 필수이다.
식당 입구에서 기다려! 식당 종업원 안내를 받아서 앉아!
테이블 매너
좌빵우물이다. 왼쪽에 빵. 오른쪽에 물이다.
양팔은 겨드랑이에 붙여야 한다. 밥 먹으면서 팔 뒤꿈치를 테이블에 올리면 안 된다..
어떤 경우도 접시를 테이블에서 들어서는 안되며. 티스푼을 입에 대서는 안된다.
음식을 먹을 때는 입을 꼭 다물고 씹어야 한다. 쩝쩝 거리지 말아야 한다.
면치기는 치명적이다. 음식 특히 면 종류 먹을 때 소리 내면 안 된다. 호루룩 하면 안 된다.
입에 음식을 넣고 크게 말하면 안 된다. 웃어도 안된다. 입안의 음식물이 보여서는 안된다.
입주변에 음식이 뭍지 않았는지 수시로 냅킨으로 닥아야 한다. 쓱쓱 문지르면 안된다. 찍듯이 툭툭 닦아 내야 한다.
이빨을 쑤셔도, 밥먹고 화장을 고쳐도 안된다.
기본적인 테이블 매너들이다.
자세히 보면 남을 배려하는 태도이다. 남을 불쾌하지 않게 하려는 마음이다. 유럽은 식사 예절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식사 예절을 기본적으로 엄격한 가정교육의 산물로 보는 것 같다. 우아한 예절을 즐긴다.
그리고 그 예절의 결핍을 천박한 것으로 분류함으로써 스스로의 우월감을 즐기는 듯 하다.
13 Jul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