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여행은 위험하다. 안전한 여행은 없다. 단지 그렇게 믿을 뿐이다.
남미에서 생긴 일들
인적 드문 이른 아침에 브라질 리우 데 자네이루의 코파카바나 해변을 산책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인생이 즐겁다. 해변을 거니는데 10대 청소년이 다가온다. 핸드폰을 달라고 한다.
택시를 탔다. 길이 막힌다. 기사가 어디서 왔냐고 묻는다. 핸드폰을 꺼내더니 통역기로 택시 미터기가 고장이 났다고 미터 요금보다 2만 원을 더 달라고 한다.
길을 걷다가 노상 카페에 앉아 진한 에스프레소를 소다수와 함께 마신다. 길을 가던 사람이 자연스럽게 테이블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을 들고 간다. 빨리 뛰어 도망가지 않는다. 그냥 보통 걸음으로 가던 길을 간다.
느낄 수 있다. 나를 둘러싼 것이다. 지하철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는데 청년들 몇 명이 나를 둘러싼다. 한 명이 내 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분명히 주스가 한 병에 2천 원이었다. 노점상은 젊은 청년이다. 5천 원을 주었다. 거슬러 주지 않는다.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거래 끝났으니 빨리 떠나라는 분위기이다.
호텔에 체크인하는데, 호텔 예약이 없다면서 예약 사이트에 물어보란다. 그리고 그 호텔에 머물고 싶으면 호텔요금을 다시 내라는 것이다. 비행기 도착시간이 늦어서 이미 시간을 자정을 지나고 있다.
대체적으로 내가 겪었거나, 현지에서 들었거나. 남미에서 있을 수 있는 일 들이다.
필리핀에서의 경우
필리핀 메트로 마닐라의 마닐라 베이에 위치한 그 호텔은 한국 비즈니스맨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한국인 두 남자가 업무상 마닐라에 왔다가. 마카티에서 반주를 곁들인 저녁을 먹고 호텔로 돌아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시간은 그리 늦은 밤이 아니었다.
필리핀 택시는 외국인에게는 미터요금에서 조금 더 달라고 하기도 한다. 일종의 팁이다.
그 택시 기사도 한국인들에게 별도의 요금을 좀 달라고 했었나 보다.
술도 먹었겠다. 이 한국인 중년 남자들은 화가 났다. 우리가 봉으로 보이느냐. 미터요금 이외에는 절대 돈을 더 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너 인생을 그렇게 살면 안 된다고 참 교육을 하기 시작했다.
흥분했고, 말이 거칠어지고 욕도 했다고 한다.
택시 기사는 자존심이 상했을 것이다.
전화로 친구에게 어느 골목에서 기다리라고 하고는 택시를 그 골목에 정차했다. 승객에게 내리라고 했다.
거기서 기다리던 택시 기사의 친구는 권총을 갖고 있었고,
두 한국 사람은 무릎을 꿇고 목숨을 구걸해야 했다.
마닐라에서 현지 교민에게 들은 이야기이다. 그 문제가 된 돈이 100페소 우리돈으로 2500원 정도 였다고 한다.
여행자의 권리
여행자에게 권리가 있는가. 여행자에게 보호장치가 있는가
나에겐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다. 여행자의 특권을 누리려 한다.
여행자는 대우를 받아야 하고, 보호되어야 하고, 우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 반대이다.
여행자는 연약하다. 훔침과 속임과 놀림과 폭력과 갈취의 손쉬운 대상이다.
며칠만 있으면 자기 나라로 돌아간다. 그러면 끝이다.
경찰은 절대 여행자 편이 아니다. 자국민 편이다.
그 사람들에게도 이유가 있다.
잘 산다면서요. 한국은 부자라면서요. 태평양을 건너서 여기에 놀러 올 만큼 부자들인데. 가난하고 그 가난에서 벗어날 희망조차 없는 우리들에게 좀 베풀고 가시면 안 되나요.
돈을 쓰려고 놀러 왔으면서, 돈 갖고 따지고, 속인다고 하고, 치사하게 몇 푼 안 되는 푼 돈 갖고 화내고 소리 지르면서 사람을 도둑 취급하는 것은 비 신사적이지 않나요.
즐거운 여행을 위하여
축제의 도시 리우에서 나의 숙소는 코파카바나였다. 거기서 삼바 축제가 열리는 공연장까지는 택시로 한 30분 걸린다. 우버를 불러서 탔다. 그런데 축제 때문에 길이 막힌다. 너무 막힌다. 한시간이 더 걸린다.
택시 기사에게 5달러를 주었다. 30분 걸릴 줄 알고 나를 태웠는데 한시간이 넘게 걸리니 니가 너무 손해가 많을 것 같다. 너의 친절하고 안전한 운전에 고마워 하고 있다고 번역기로 메시지를 보여 주었다.
난 칠레에서 그런 경험이 있다. 우버기사가 길이 막히니까. 목적지에 가기도 전에 그냥 나를 내려놓고 가 버렸다.
원칙을 따지면 손해다. 지금 이 우버 기사가 이 밤중에 나를 리우의 외곽 빈민가에 내려 놓고 가버린다면 낭패다. 그냥 미리 돈을 조금 더 주는게 낫다.
여행을 하면 잃어버린다. 나의 실수로 잃어버리기도 하고, 누군가에 속아서 그렇게 되기도 하고, 강제로 그렇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잃어버린 것이 물건이나 현금이면 고마워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잃어버린 물건이나 현금을 누군가가 잘 사용하기를 마음속으로 기원해 주어야 한다.
잃어버린 것이 건강이나 마음이나 시간이나 그런 것들이 아님을 고마워하는 것도 방법이다.
나는 늙었고, 혼자하는 여행이다.
한달 남짓의 남미 여행에 치안과 안전은 늘 마음에 부담이었다.
그러나
여행자의 바람직한 마음가짐일 듯하다.
빼앗겨 주고, 속아주고, 손해보는 여유.
14 Jul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