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여행을 떠나기 전에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 .
비장한 심정으로 레떼의 강을 건너다.
희랍 사람들은 죽으면 하데스 Hades로 간다고 믿었다.
그리고 사후의 세계는 착한 사람들이 가는 엘리시움 Elysium과 나쁜 사람들이 가는 타르타로스 Tartaros로 나누었다.
이승에서 저승으로 가는 데는 레뗴의 강이 있다. 망각의 강이다.
이 강을 건너 저승에 가면 이승에서 있었던 모든 것들을 다 잊게 된다고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그렇게 믿었다.
서울을 떠나 멕시코의 멕시코시티까지는 18시간이 걸린다. 미국 애틀란타에서 3시간의 대기 시간을 포함하여 그렇다.
태평양을 건너면서 나는 결심했다. 이 바다가 레떼의 강이다. 나는 지금 그 강을 건넌다. 나는 망각할 것이다.
내가 누구인지 잊을 것이다. 나는 죽은 것처럼, 마치 그 강을 건너 사후 세계에 온 것처럼 엘리시움에서, 그 푸른 초원에서 다시 태어난 듯 즐거울 것이다.
태평양 이쪽에서의 모든 인연과 업보를 벗어던지고 나는 어린아이처럼 즐거울 것이다.
한 달이 넘는 남미여행. 그것도 늙은이 혼자 떠나는.
어떻게 떠난 여행인데. 시위를 떠난 한 개의 화살이 되어 나는 태평양을 건넌다. 중도에 포기하고 돌아오지 않으리. 죽더라도 거기에서 죽으리...
그렇게 하기 위하여 나그네는 돈 몸 깡. 이 세 가지를 마음에 다시 새긴다.
돈
남미는 자유여행이 많다. 아무래도 경비와 시간이 많이 드는 여행이다 보니 중년 이후의 사람들이 많다. 자유여행의 절반이상이 부부이다.
브라질에서 만난 한 부부는 두 분 다 70이 넘으셨다.
홀로 된 시아버지를 부인이 정성껏 함께 살며 모셨단다. 그리고 그 아버지가 돌아 가시자 할아버지가 그간 수고하신 할머니에게 남미 3개월 여행을 선물하신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부부는 너무 돈을 아끼신다.
숙소문제부터 그랬다.
돈을 아낀다고 리우 데 자네이루 외곽에 지하철을 타고 나가야 하는 곳에 숙소를 정했다고 한다.
리우는 항구다. 덥다. 위도와 고도가 낮다. 매우 덥다.
그 더운 날씨에 아침 일찍 일어나 지하철을 타고 시내로 와야 한다. 노인은 하루 종일 돌아다니기에 체력이 모자란다. 낮에 쉴 곳을 찾아서 자주 커피숍이나 파라솔에 앉아야 한다. 그 돈이 그 돈이다.
지하철에서 소매치기당하면 지갑과 함께 돈이 사라진다. 길가에서 시간을 많이 허비하니까 여행 일정이 길어진다.
남미 호텔이 그리 비싸지 않다. 다른 물가에 비해 싸다.
차라리 시내에 또는 관광지 밀집지역에 호텔을 잡는 게 결과적으로 싸다. 교통비와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돌아다니다가 덥거나 피곤하면 수시로 호텔에서 쉬고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다.
여행에 너무 돈을 아끼려 하면 여행 자체가 피곤해진다.
또는 여행지에서 아낀 돈은 결국 경제적 손실이 될 수도 있디.
돈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 숙소, 이동. 음식이다. 이 돈은 아끼면 손해이다.
푼돈 아끼다가 돈 잃고 마음 잃고 결국 여행을 중도에서 포기하는 경우도 여러 번 보았다.
몸
건강이 최고다.
아프면 망한다.
가장 경계할 것이 물갈이 배탈과 몸살이다
여행은 휴식이 먼저이다. 여행 계획은 여백을 우선하여 정하고 나머지를 채워야 한다.
5주의 여행가운데 5번의 휴무를 미리 정했다. 일정의 강도를 감안하였다. 그래서 일주일에 하루는 호캉스로 즐겼다. 하루 종일 뒹그리 뒹글리. 먹자 데이. 먹고 자고 먹고 자고.
마음이 먼저다. 마음이 급하면 몸이 고생하게 된다.
여행은 마음의 느긋함. 여유. 공백 그래야 몸이 보인다.
나를 힘들게 한 것은 고산증이었다. 남미는 다르다.
나는 중앙아시아 천산산맥이나 힌두쿠시 그리고 파미르를 여행했었다. 전혀 고산증이 없었다.
남미 안데스에서는 고산증에 힘들었다. 페루 쿠스코에서 약을 먹어도 소용이 없다.
건강은 정말 중요하다. 몸이 아프면 집이 그립다. 당장 돌아가고 싶어진다.
깡
나는 174cm 68kg이다. 이런 나의 신체적 조건에 대하여 가족들은 조금 빈약한 체격이라고 걱정한다.
나는 나이도 많다.
남미여행을 진심으로 말리는 친구들도 있었다. 거긴 혼자 여행하기엔 너무 위험하다는 것이다.
스페인어도 모르고, 무슨 일을 당하면 도와줄 사람도 없다.
그러나 나에겐 젊음과 근력은 없어도 깡다구는 있다. 남미에서 죽을 지언정 여행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다짐이다..
나는 안다.
인간관계는 결국 기싸움이다. 기를 쓰고 기선을 제압한다.
어떤 경우에도 기가 살아있어야 한다. 남자는 특히 그렇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감이다. 적을 능가하는 마음의 평화.
어떤 경우에도 동요하지 않는 그 고요함.
깡은 결코 무모한 용기가 아니다 충분히 계산 되어야 한다.
깡은 거기에서 나온다. 평온한 마음. 여행자의 마음이다. 다 이해하고 보듬어 줄 것 같은 분위기로. 상대방을 압도하는 기품 있고 고상하고 자애로운 자세가 어둠에서 나를 보호해 준다.
리우데 자네이루의 깊은 밤에. 삼바 축제의 날에
나는 우버 택시를 타고 삼바공연장으로 가고 있었다.
삼바 공연장은 악명 높은 빈민가 우범지역과 멀지 않다. 나는 혼자이다. 그 길을 혼자 택시를 타고 가고 있다.
길이 엄청나게 막힌다. 30분이면 갈 길을 두 시간이 걸린다. 우버기사는 30분을 예상하고 택시요금을 받았다. 운전기사로서는 두 시간이면 손해이다. 나를 중간에 내려 주고 가 버리면 나는 칠흑같이 어두운 우범지역, 그 늑대굴에 홀로 남게 된다.
5달러를 주었다. 수고한다고, 좀 시간이 걸리지만 함께 가자고, 난 이미 너의 모든 신상정보를 알고 있다고. 넌 최고의 우버 기사이자 좋은 사람이라고... 두근거리는 심장을 억제하면서...
깡이 없으면 삼바축제도 구경하지 못한다.
21 Jul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