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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 단비 Jan 03. 2024

겨울숲 다시 보기

새해에는 겨울나무처럼 지혜롭고 여유롭고 너그럽길

2023년 마지막 날  걸었던 이승이 오름 둘레길에선 뽀드득뽀드득 하얀 눈길과 폭신폭신한 낙엽길을 번갈아 걸었다.  고요하던 숲에 천둥 같은 바람이 찾아들면 나무들은 서로 부딪치며 이리저리 흔들리며  춤을 추었다. 오늘의 춤은 살사 같기도 하고 탱고 같기도 했다. 춤은 바람의 세기에 따라 달라졌다.  나무의 춤은 매혹적이라 한번 빠져들면 헤어 나오기가 쉽지 않아 자꾸만 바라보게 된다.

나무 사이가 헐렁해진 겨울 숲에 들어서면  빛을 받은 나뭇잎과 열매들은 반질반질 매끈한 윤기가 흐른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늘진 내 마음자리에도 환하고 따스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비타민 D를 흡수한 내 마음엔 생기가 반짝인다. 겨울숲에서 사람도 나무도 빛을 받아야 건강하게 살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다시금 깨우친다.


휑하고 메말라 보이는 겨울숲에는 다양한 볼거리가 숨어  다. 겨울나무의 수피와 열매들 그리고 가지가 떨어져 나간 자리와 잎자루가 떨어져 나간 자리엔 다양한 모습이 새겨져 있다. 사람 얼굴 같기도 하고 동물의 얼굴 같기도 오름의 지도 같기도 하다.

겨울숲의 나무들은 서로 다른 나무끼리 기대어 양보하고 나누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모습에서 너그러움과 지혜로움이 느껴졌다.  나는 누군가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싫었고, 누군가가 나에게 폐를 끼치는 것도 싫어했다. 그런 나에게  나무는 힘이 들면 옆에 있는 사람에게 기대도 좋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자애로운 엄마처럼 조용히 타이르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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