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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여름의 단비 Nov 22. 2023

잊지 못할 이름, 윤슬

10월의 어느 청명한 가을 하추자 올레 18-2 코스를 걸었다. 추자면사무소 종점에서부터 역방향으로 걷다가 힘들면 중간 스탬프만 찍고 추자항으로 돌아오리라 마음먹고 느긋하게 걸었다.


아침 햇살이 잔잔한 바다 위에서 찰랑찰랑 춤을 춘다. 바닷길로 아련한 윤슬의 빛을 따라 여유롭게 걸을 거라 생각했던 건 나의 큰 착각이었을까? 추자교를 지나자 연리목을 시작으로 금파골 산길이 이어다. 그때까지도 내 앞에 고 난이도의 가파른 산길이 나오리라고 전혀 예상치 못했다.



산 위 전망대에서  바다의 윤슬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금파골을 지나 묵리슈퍼까지는 힘들어도 걸을만했다. 리 마을을 지나 바닷길을 걷다가 올레 화살표를 지나쳤다. 화살표를 놓친 곳으로 다시 돌아오니 화살표는 또  산길을 가리켰다.  꼬불꼬불한 산길에는 올레 리본도 잘 보이지 않는다.  올레 리본이 없는 갈림길에 서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지 몰라서 머뭇거렸다.  내가 선택한 길은 사람들이 더 많이 다닌 듯한 길이다. 한 참을 걷다 보니 나뭇가지에 매달린 올레리본이 보여서 반가웠다.  선택이 옳았구나!


산길이 끝나고 신양2리 마을을 지나자 대왕산 입구 안내표지판이 보였다.  오르막길을 걸어 대왕산 중간 스탬프를 찍고 주위 풍경을 둘러보는데, 저 멀리 가파른 오르막 계단이 보인다. 설마 저 길을 걷는 건 아니겠지? 하며 걸었다. 올레 화살표가 설마 했던 그 길을 가리킨다.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처음으로 올레 화살표가 야속했다. 한 계단 한 계단 힘겹게 대왕산 황금길을 넘어 지나온 길을 돌아보니 아찔하다.

 

아슬아슬한 벼랑 사이로 난 오솔길을 지나자 다시 오르막 계단이 나타났다. 오 마이갓!! 여기가 졸복산이구나. 다시 계단을 오르자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고 현기증이 나서 계단에 주저앉았다. 얼마나 더 가야 산길이 끝나는지 물어볼 사람도 나타나지 않아 눈앞이 캄캄했다. 땀범벅이 된 얼굴을 닦으며  앞을 바라보니 잔잔한 바다 위에 작은 섬과 은빛의 윤슬이 곱고 환하게 나를 비추고 있었다. 그 고마운 빛의 기운으로  다시 일어나 온전히 걸을 수 있었다.


한 발짝도 더 걸을 수 없어 막막하던 그 순간 나의 길동무가 되고, 온전한 휴식이 되어준 빛..

그 이름은 잊지 못할  윤슬이다.

사진출처: 제주올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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