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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웃음이 May 14. 2021

죽은 시인의 사회는 살아있다



교문 앞에 들어섰다. 마음만큼이나 가파른 등굣길을 걸었다. 혼자였다. 고등학교 1학년 복도. 마지막 계단 끝에 길게 늘어선 복도에는 몇몇 친구들이 먼저 기다리고 있었다. 나도 신발장 앞 쪽으로 갔다. 고개를 숙였다. 내 차례가 되었다. 탁! 지각의 벌로 맞은 한 대의 매. 울었다. 무겁고 억울해서. 선생님이 말했다. “교무실로 따라와.”




의아하셨던 걸까. 선생님은 내게 우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나는 한껏 독이 오른 눈물로 아침에 있었던 일을 말씀드렸다. 선생님은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아니 못하셨다. 어쩌면 나는 그날 이 한마디로 내가 맞은 한 대의 매보다 더한 매를 선생님을 향해 때렸는지도 모른다. “차비 빌리러 삼촌 집에 갔다가 늦었어요. 제가 왜 맞아야 하죠?”




생각해보면 내게서 어떻게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으로 선생님께 그런 이야기를 했을지도. 늦게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눈 떠보니 어지러운 집안. 시간이 지체되고 차비마저 없었다. 20분을 걸어 삼촌 집에 도착해 돈을 받아 등교하던 아침이었다.




어려워진 집안의 환경. 그 속에서 헤매던 나는 그때 처음 솔직했다. 어쩌면 마음 밑바닥 속내까지 꺼내 보이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그깟 매 한 대가 뭐라고.  그렇게 서럽게 울 일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 날 나는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길 위에 서 있었나 보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그냥 지나치지 않았다. 다행히도.




언젠가 동네책방에서 주최한 청소년 작가의 강연을 들으러 간 적이 있다. 청소년 작가의 생각과 꿈이 궁금하기도 했고 추억이 담긴 물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는 주제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나는 그곳에서 중학교 시절 음악 선생님이 선물해준 책을 소개했는데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청소년 작가와 나의 교집합을 발견했다.




바로 학교 선후배라는 사실. 더불어 내게 책을 선물해준 첫 어른인 음악 선생님이 중학교 교장선생님이 되었다는 소식과 본인이 학창 시절 나를 딸처럼 예뻐해 주셨던 미술 선생님의 제자라는 이야기.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만난 반가움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보고 싶어 졌다. 그날 저녁, 학교 홈페이지를 찾았다.
 



나는 시내에 있는 한 기독 재단의 여중 여고를 다녔다. 행사 앨범에 담긴 변함없는 강당의 모습. 그 강당에서 예배시간과 행사 때 피아노를 치던 중학생인 나와 예배준비를 위해 분주했던 고등학생인 내가 있다. 전북 시 대회에 나가 최우수상을 받아 왔을 때도 바로 그 강당에서 이름이 불렸다. 여러 날들의 기억에 어느새 나는 교복을 입고 학교에 들어섰다.




학창 시절에 함께 했던 선생님들의 얼굴이 보였다. 교장 선생님, 음악 선생님, 수학 선생님, 내 친구 순영이가 좋아했던 국어 선생님, 문학 선생님, 체육 선생님. 선생님들의 얼굴을 뵈니 그 시절의 별명까지도 떠올라서 웃음이 났다. 훌쩍 커버린 나만큼 선생님들은 더 인자하고 온화한 모습이었다. 지금은 퇴직하신 내가 좋아했던 미술 선생님도.




학교 근처에 있는 꽃집에 들러 꽃을 사기 시작한 이유도 선생님 때문이었다. 봄에는 노란 프리지어를 가을에는 소국을 사서 선생님 책상 위에 꽃을 올려놓았다. 그 위에 놓인 빨간 드레스를 입은 나와 검정 턱시도를 입은 선생님과 함께 찍은 정기 연주회 때의 사진. 그 다정한 기억이 좋았다. 그림을 잘 그리는 선생님의 훌륭한 베이스 음색도 잊히지 않는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미술 선생님을 종종 만날 수 있었다. 나는 점심을 먹고 교실 복도 앞 창가를 서성였다. 식사하고 나오는 선생님을 보기 위해서. “선생님” 하고 부를 때면 선생님은 언제나 손을 크게 흔들어 주셨다. 1년이 지나 한 층 더 높은 곳에서 선생님을 부를 때에도 변함없이.




교정 가운데에 자리한 보랏빛 구슬을 닮은 등나무 아래 벤치를 기억한다. 점심시간이면 선생님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장난하던 곳. 공부를 뛰어나게 잘하는 학생은 아니었다. 그저 웃음이 많고 꿈이 많고 눈물까지 많던 몸이 약한 아이. 그런 나를 선생님들이 채워주셨다. 따뜻하고 강렬하게. 나를 향한 신뢰.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 좋아하고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시간들에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책을 좋아하게 된 것도 글을 쓰게 된 것도 음악을 사랑하고 꽃을 항상 그리워했던 이유도. 그 모든 것들이 선생님들을 통해 알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잘하고 좋아하는 것들까지도.




선생님은 사춘기 시절에 만난 내게 의미 있는 어른이자 친구였다. 그리고 그 시간을 잘 넘길 수 있도록 지탱해준 존재.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존재가 되고 싶게 만드는 추억. 그 촘촘한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만들고 무너지지 않고 단단하게 지금을 살 수 있도록 도운 또 다른 이름의 부모는 아니었을까.




한 대의 매. 한 권의 책. 한 번의 손 인사. 내게 일어났던 한 번의 사건들은 단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 한 번이 깊게 박혀 수많은 날을 곱씹게 하고 그 시간을 추억하며 더 나은 존재가 되고자 노력했으니까. 죽은 시인의 사회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분명하게 남아 끝까지 살아 숨 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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