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롱이 산책을 충분히 하지 못할 어린 시절, 나는 중학교 2학년이었고, 재롱은 3-4살 쯤 되었던 때다.
이때부터 재롱의 작은 외출이 잦아졌던 것 같다. 요즘보다는 덥지 않은 적당한 더위의 여름이었다. 나는 시험이 끝난 날이어서 친구와 우리집에 가기 위해 집 앞에 거의 도착했다. 할머니에게 전화가 왔는데 재롱이 산책을 하다가 줄이 풀려 산으로 도망갔다는 거다.
집 앞의 작은 산은 놀이터에서부터 이어져서 다른 동네의 큰 공원까지 갈 수 있고, 하마터면 아예 다른 동네로까지 갈 수 있는 큰 산과 이어져 있었다.
그 전에도 이런 일이 몇 번 있었다. 나 살려라 하며 꽁지 빠지게 산으로 달려가는 재롱을 잡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때는 재롱이 나가자마자 내가 따라갈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없는 상태에서 재롱이 도망갔다.
재롱을 바로 따라 나가도 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른 강아지였는데 내가 여기서 가는 동안 재롱이 얼마나 더 멀리갈지 상상하며 두려운 마음만 커져갔다.
전화를 받자마자 바로 방향을 틀었다. 친구와 함께 땀을 흘리며 5분이 넘는 거리를 무슨 정신인지 헐레벌떡 뛰어갔다.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도착하니 할머니는 공원 근처에서 재롱을 찾고 있었고 재롱은 머리털 하나 보이지 않았다.
나와 친구는 놀이터와 이어진 작은 산의 입구와 반대편으로 나눠 올라갔다. 아무리 봐도 재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주저 앉아서 울고 싶기만 했다. 이대로 재롱을 찾지 못한다면? 상상도 하기 싫었다. 그때는 당근이나 포인핸드도 몰랐거나 없던 때였다.
재롱을 애타게 부르면서도 이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하는지 머릿속이 백짓장같이 하얘졌다는 말을 실감했다.
동산을 한바퀴 돌고 다른 산으로 이어지는 입구에서 혹시 여기로 가버렸나 안절부절하고 지나다니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보여주며 친구와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 사이 놀이터에서 소리치는 할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재롱이 여기있어 ! 여기로 내려왔어 ~~”
호다닥 달려가보니 진짜 놀이터를 누비는 재롱이 보였고 나와 친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재롱을 찾는데(재롱이 스스로 산에서 내려오는데) 걸린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런데 나에게는 그 어느때보다 길고 어두운 시간이었다. 혼자 동굴 안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막막함이 온 몸을 덮친 기분이었다.
재롱은 그런 언니 마음도 모르고 신나서 놀이터를 활보하며 뛰어다녔다. 이곳 저곳 냄새도 맡으며 꼬리가 하늘로 길어질 듯이(마치 필라테스 강사님이 정수리를 하늘로~ 할 때의 느낌이랄까) 팔랑거리며 달리는데 그 때는 누가 봐도 ‘재롱 신났구나.’ 하는 게 느껴지는 퍼포먼스를 보여줬다.
강아지는 사람이 몸을 낮추며 잡으려는 듯한 자세를 잡으면 피하는 게 보통이다. 우리 재롱도 보통의 강아지였다. 그래서 세 사람이 합심을 해 재롱을 겨우 구출하고 하네스를 채워 진짜 산책에 나섰다.
지금도 생각하면 아찔한 기억이다. 가족 중 누구 하나라도 재롱이 산책이 충분하지 못해 그런 거라는 걸 알았더라면 덜 나갔을까. 미안해지는 마음이 가득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