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淸明

맑아지기를.

by 휘진

진부하지만, 하늘에 대해 이 말만큼 적합하며 아름다운 말도 더 없다. 청명, 하늘이 맑아진다를 뜻하고 있다. 예민한 감정 상태와 좁아진 시야와 사고, 구름이 아름답게 간섭한 파란 하늘이 아닌 불쾌한 잿빛의 구름이 모든 것을 뒤덮고 있다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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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쾌하다는 느낌이 들지는 않는다. 예민하고 짜증 나고 무엇 하나 잘 넘겨내지 못하는 것이 꼭 올해 초의 상태로 돌아가버린 것만 같은데, 나는 내가 잘못됐다고 생각을 하고 있으면서도 아닌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바람직한 게 아니라 이건 분명 불쾌하고 잘못된 것이다. 나는 밖에서는 거의 무조건적인 YES 맨이며, 배려심 깊은 사람으로 행동하려고 노력하며 그런 이미지를 쌓아가고, 착실하다는 느낌을 주고 있다. 하지만 집에서는 그 반대의 모습이 점점 노출이 된다. 워라밸이 무너진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글을 쓰면서 생각을 정리하고, 나를 되돌아보는 시간이 2주에 한 번 꼴이니 나는 예전처럼 그 균형을 찾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앞뒤가 막혀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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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있는 수로가 막혔다. 물난리까지는 아니었지만 물이 새어 나왔고, 미뤄왔던 집안일을 반강제적으로 하며 깔끔해진 집안을 오랜만에 마주했다. 지금의 내게 이런 사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꽉 막혀있는 불쾌한 예민함과 수로를 좁게 만들어버린 실체가 없는 무언가들을 뚫어내야 무엇이든 다시 흘러갈 수 있다. 흘러가는 것이 불쾌함, 후련함 모든 것을 쓸고 내려가더라도 나는 이러한 환류, 환기의 과정이 필요한 시점 같다. 맑아져야 하는 건 지금의 나라서, 나는 다시 맑아져야 할 것 같아 이번 청명에 더 성찰적인 생각을 하려고 애쓰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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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아지는 것이 쉽지 않다. 내가 기대고 싶은 사람은 있지 않으며, 사실 사람에 대한 정이 크게 있다고도 할 수 없다. 이 와중에 공감이라는 내 가장 큰 빛을 나는 그만 잃어버려 누구의 아픔에도 공감을 하지 못하고 그동안 쌓아온 경험으로 '연기'하고 있다. 공감을 연기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이건 나한테도 타인에게도 몹쓸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나는 연기를 멈추지 못한다. 죽고 싶다는, 그만두고 싶다는 연락도 받았다. 하지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진의는 누구도 알 수 없지만 내가 감히 판단한 그 말이 내포하고 있는 의미는 '개선하고 싶은데 뜻대로 되지 않는다'였을 것이다. 내 손목에 남아있는 20줄의 흔적과 내가 파 놓았던 깊고 깊은 심연과 같은 구덩이들은 참고서처럼 건네줄 수 있는 그런 경험이지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으니, 또한 귀를 막고 있으니 나는 줄 수 없었다. 오히려 타인에게서 전해진 우울은 그것이 몇 년을 반복하였으나 개선되지, 아니, 개선하지 않은 우울이었기에 더 이상 진심 어린 공감 같은 건 불가능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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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가 사랑하는 여름의 푸른 하늘이 오기 전, 내가 그렇게 되고 싶다. 사랑스러운 그 계절을 안기 위해 준비하고 싶다. 여유가 생긴 것만 같았고, 실제로 어느 정도 그랬다. 하지만, 그런 건 착각에 불과했음을 4월의 시작과 함께 깨달았다. 나는 고대한다, 맑아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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