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立秋

by 휘진


절반 이상의 절기가 지나갔다. 작물들이 한창 익어가는 요즘, 일도, 삶도 이제는 얼마나 익었고, 성장했는지 눈에 담아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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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첫 주에는 여름 휴가를 다녀왔다.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 입추가 찾아왔고, 드디어 가을이라고 생각하려고 하지만 날씨는 여전히 여름이다. 풍경은 가을인데 날씨는 여름 같은 상황이 아니라 아직은 풍경도, 날씨도 여름이다. 작년 11월에도 반팔을 입고 낮을 보내던 사람들의 모습을 아직 기억한다. 분명 올해도 아주 늦게까지도 여름일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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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추가 지난 뒤에는 어쩌다 늦더위가 있기도 하지만 밤에는 서늘한 바람이 분다고 한다. 그 말이 아주 틀리지는 않아서 아무 바람도 들어오지 않고, 에어컨까지 틀지 않은 방보단 밤의 골목이 더 시원하다. 아침도 그늘에서는 선풍기의 미풍과 비슷한 바람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어쩌다 늦더위라고 하기엔 오전 10시부터 일몰까지의 기온은 살인적이다. 청명의 시기도 있겠지만 내가 기억하기엔 작년 10월의 강원도 인제 산 속의 낮도 등의 땀이 마르지 않을 정도로 더운 날씨였다. 기상 이변이 해마다 일어나는 것 같다. 햇빛이 따갑기만 했던, 그늘은 정말로 시원한 곳이었던 14년 8월의 자전거 도로는 여름마다 그립다. 아마 나는 2020년까지만 여름을 사랑했을 것이다. 이후에 적어내었던 여름들은 내가 사랑했던 여름에 대한 미련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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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아침마다 기대했다. ’오늘은 얼마나 짙은 푸른색의 하늘일까?‘, ’오늘은 뭉게 구름이 떴을까?‘라고. 어느 순간부터 그런 기대는 하지 않게 됐다.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겨울을 그리워하고 있다. 이것 역시도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겠다. 계절에 대한 사랑 같은 것도 이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리워하는 겨울은 그 계절의 옷과 덥지 않은 날씨, 이불을 덮으면 느껴지는 따뜻함과 푸근함의 느낌이지 절대 풍경은 그 안에 있지 않다. 나는 어떤 계절도 사랑하지 않게 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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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같았던 서론을 지나 일본 얘기를 적는다. 일단 여름 휴가는 80%의 성공이었다. 사실 감성과 조용한 도시 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오사카라는 대도시와는 잘 맞지는 않았다. 술은 잔뜩 마시고 걷기도 잔뜩 걸었지만 콘크리트 숲의 풍경은 나에겐 감성으로 느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마냥 재미없지는 않았다. 그 좋아하는 술에 돈을 다 쓰고, 먹는 것에 드디어 돈을 아끼지 않았다. 3일 동안이나 치아 사이에 단단히 박혀버린 장어 덮밥은 올해 들어 먹은 음식 중 단연 최고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맛있었다. 행복, 멀리 안 있었다. 이러려고 스트레스 받아가며 돈 벌고 여행 다니는 거지. 9월에는 가족 여행으로 다시 오사카를 간다(…). 분명 이때도 거의 파파고 마냥 나만이 일본어를 하고 있겠지만 그래도 가족 해외 여행은 처음이니까 또 다른 느낌으로 새롭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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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성장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일단 한 번 마른 감정 다시 풍부해지는 건 쉽지 않은지라 그냥 살고 있다. 꼰대같은 모습과 뒤끝은 점점 심해지고 짜증은 늘어서 약간의 어긋남을 접하면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는다. 한 3시간 정도는 지나야 잔잔해지는 심리 상태는 감정을 표현한다는 부분에서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 항상 모든 성장은 올해의 끝이 와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변함없다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것만큼은, 다른 성장은 몰라도 이 내적인 성장만큼은 12월 31일이 지나도 알 수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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