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남은 절기가 한 자리수가 되었다. 처서 이후의 시간들을 보내면서 이번 처서도 어느 정도 들어맞았다고 느끼고 있다. 가을이 드는 계절의 순행이라고 표현되지만 사실 가을은 아직 멀게만 느껴진다. 아침 밤으로 선선해진 공기, 그늘이 많은 지역이면 사실 긴 팔을 입고 20분 정도 산책하기 좋은 날씨이다. 지난 2주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날씨이지만, 사실 내가 기억하는 미련 속의 여름이 지금의 날씨였다. 햇빛은 여전히 뜨거워 아이스크림이나 아메리카노가 한 손에 들려있었고, 그래도 쉽게 가라앉지 못하는 더위를 피하려고 그늘로 들어가면 달궈졌던 뒷목이 그새 시원해졌고 티셔츠 밑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그렇게 시원했던 것이 내 기억 속의 여름이었다. 오늘 이 글을 쓰러 카페를 오는 동안 느낀 이 절기와 바람은 내가 그리워하던 그 여름과 완전히 닮은 것이었다. 어쩐지 조금 그립다는 감정이 들었고, 마침 플레이리스트에는 검정치마의 everything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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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 같이 선선해지긴 했다. 에어컨을 틀지 않은 집보단 아침과 밤의 바깥이 더 낫다 수준이 아니라 시원했다. 재킷을 입기에는 아직 낮이 건재하기에 쉽게 엄두를 낼 수 없지만 아침과 밤이라면 재킷을 입으면 딱 적당하단 느낌이었다. '여름은 아직도 그 숨에 힘이 실려있구나'라고 느껴지다가도 계절의 순환은 그럼에도 오는 것이기에, 가을의 호흡 소리가 조금씩 들려오는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이게 된다. 다음 주면 다가올 백로에는 날씨가 또 어떻게 변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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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계절을 타고 있다. 가을이면 항상 듣는 말이, "너 가을 타냐?"라는 말이었는데 사실 그건 이 계절이 주는 고정적인 이미지가 아닐까(...) 나는 모든 계절을 타고 있었다. 봄이면 벌써 봄이구나 싶어서, 내가 기억하는 자리에 꽃이 여전히, 작년처럼 피었을지 궁금해져서, 간질거리는 봄바람에 차분해진다. 여름은 여름이라서, 아직도 미련하게 내가 사랑했던 여름이 돌아올 수 없단 걸 알면서도 그리워해서, 내 모든 상처들은 항상 여름에 있어서 적적해진다. 한없이. 가을은 이 처서부터 시작이다. 이유는 알 수 없다. 아마 풍경에서 오는, 날씨에서 풍기는 알 수 없는 오렌지 빛 가득한 듯한 노란색이 눈에 아른거리는 것만 같아 적적하다. 겨울은 한 해가 끝난다고 적적하고. 이제는 쉽게 비쳐지는 내 모습은 심심해 보이는, 반응 없는 사람이지만 난 이렇게 감정적이라 속으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감정을 끌어올렸다가, 내리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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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기 따라 흘러가는 감정과 삶이라고, 처서의 날씨 따라 한껏 들떴던 마음에 약간의 찬 바람이 들어왔다. 예민하고, 짜증적인 모습이 굉장히 드러나고 있다. 세상 나 혼자 살고 있는 것 같고 그렇다. 전혀 그렇지 않은데,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단 걸 알아서 내 머리는 그것을 조율하려 애를 쓰지만 역시 사람을 움직이는 건 마음인 걸까. 쉽지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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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망가져있다 생각한다. 정신과라도 가보려고, 정말 전문 상담이라도 받아보려고 하다가도 사회복지사인 나한테 있어서는 그런 기록이 하나하나 남는 것이 마이너스라 어떻게든 내가 날 돌보려고 하고 있다. 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망가져있다 생각한다. 난 지난 2020년의 10월부터 무엇이 원인인지도 모른 채 '난 내일 죽어도 이상하지 않아.'라고 종종 생각하고 있고고, 그렇게 생각하며 21층의 호텔 창문에서 아스팔트 도로 한 가운데를 내려보아도 이상하게 두려운 감정이 들지 않는다. 살아가면서 대단히 방해가 되고 충동이 된 적은 없어 데려가고 있다. 두고 가야만 하는 걸 알면서도 새끼 손가락이 붙들린 것만 같은 기분에 이 회색의 생각을 떨쳐내지 못하고 자꾸 데려 다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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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건 더운 마음에 들어선 시원한 바람이 아니라 태풍이 오기 전 고요한 바다 같은 전조 증상과 닮아있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살아야지, 그래도 내일도 눈을 떠야겠지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나는 9월 4일 월요일 오전 7시 20분에 눈을 뜨고, 이를 닦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