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秋分

by 휘진

덥고 추운 것도 추분과 춘분까지이다.

작년 이 절기에 써내었던 추분을 다시 꺼내보았다. 무엇이 그렇게 절망적이었을까, 외로웠을까, 사색했을까. 부드러웠던 가을의 눈빛이 매섭다고, 나는 그렇게 적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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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군대가 사람을 그렇게 만들어놓았겠지… 지금 와서는 전혀 동의하지 않는 문장이다. 한반도의 올해가 작년보다 더웠을까, 아니면 2022년 9월의 파주가 2023년 9월의 서울보다는 덜 더웠던 걸까. 나는 매서웠던 여름의 더위가 드디어 꺾이고 감사한 바람이 불고 있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그늘 없는 거리는 따갑지만 그늘에라도 들어가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이 느껴진다. 자전거는 정말 용기를 내고 타야만 했던 뜨거운 여름은 지나고, 해질녘과 이른 오전에는 타고 다닐만한 날씨가 되었다. 드디어 해는 짧아져 6시만 되어도 한 여름의 7시 30분 같은 하늘을 보여준다. 이 여름이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나는 이번 추분이 유독 반갑다. 어쩌면 처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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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오사카 가족 여행은 그래도 성공적이었다. 나는 나름의 번역기 노릇을 했다. 글은 읽지 못하지만 결제와 주문을 했고, 저번 여행에선 술과 자유 여행이 컨셉이었다면 이번에는 유니버셜 스튜디오, 쇼핑 등 관광 컨셉이 되었다. 그래도 가족 여행이고, 가족끼리 온 첫 해외 여행이었는데 싸우는 건 좋지 않으니 어떻게든 웃고자 했고…그렇게 지쳤다. 그 상태로 바로 다음날 재단 행사 참석… 뒤풀이… 첫 필름도 그렇게 끊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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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Z세대 답게 에어팟 꽂고 성능 자랑했다는 흑역사 썰은 덤으로… 체크카드도 잃어버렸다. 돈은 털리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지만 여러모로 다이나믹했던 절기 맞이였다. 생각보다 바빴던 한 주였다. 그정도 흑역사는 역시 업무량으로 덮을 수 있었다. 속풀이도 하고, 포부도 밝히고, 어쨌든 새로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덥기만 했던 열정이 식었다라는 느낌보단, 과열되었던 몸과 머리에 새로운 바람이 들어온, 쿨링이 되는 시기였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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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성선설보단 성악설을 더 믿는 편이고. 그렇다고 감사할 줄 모르는 건 아니고, 그 표현이 꼭 종교를 믿는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두 손 모아 기도 하는 것도 아닌데 뭘. 고개를 45도 정도 기울인 감사한 해이다. 올해가 빨리 갔으면 하는 바램보다도 먼저 올 것은 지나갔으면 하는 2023년에 대한 감사다. 애사심 같은 거창한 것도 아니고, 내 직업을 사랑하는 것도 아니지만 싫어할 이유도 없어서, 모든 게 처음이라 기준이 없지만 그럼에도 좋다는 생각이 드는 팀원들과 팀장님, 회사의 분위기. 동기와 주변 사회복지사들에게서는 항상 괴담만 들었다. 가장 늦게 취업한 내가 그 괴담들과 비교할 수 없는 분위기의 회사에 취업했단 건 정말로 감사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대기업이 아니고서야 동료들, 상사들 잘 만나야 사회생활 오래 하지… 이미 사회생활에는 약간의 도사다. 어디 가서 미움 받을 성격 아니고, 사람마다 모습이 다른 가식쟁이가 바로 나다. 그러니, 감사하지 않더라도 감사하게, 감사하다면 더 열심히, 그렇게 남은 2023년을 마무리하고 싶단 생각이 이제서야 뿌리를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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