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霜降

by 휘진

봄, 여름까지는 절기대로 흘러간다고 생각했는데 일단 가을은 정말 무의미한 듯 하다. 여름과 겨울이라는 자기주장이 너무나도 강한 두 계절의 사이에 끼어있어서 그런지 참 애매모호하다. 봄도 그 둘 사이에 끼어있다는 것은 매한가지이지만, 춥다가 날이 풀리는 듯 싶다가 그러다가 여름이라는 느낌인데 가을은... 언제 추워지나 기다리다가 추워지면 이제 곧 겨울인가 싶은데 한낮은 반팔을 입어도 어색하지 않은 풍경들이니 아침에 어떻게 옷을 입고 나가야 하나 곤란할 지경이다. 아침, 밤이 추워 코트를 입기엔 정신 나간 듯한 20도의 낮 기온이 예보되어 있으니 그저 곤란하다. 더군다나 퇴근길의 지하철이란 가득 들어 찬 사람들 탓에 절대 추울 수도 없으니... 입동 전에 상강이라지만, 입동이 막상 오더라도 별 차이는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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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문제를 풀다가 참 의문스러웠던 문항을 하나 찾았다.

Q. 직장 상사의 비위 맞추기 행동으로 올바르지 않은 것은? 이라는 문제의 정답으로 '본인의 능력을 알리지 않고 겸손하게 이야기 한다.' 가 정답이었다.

...? 세상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직장 상사에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능력을 겸손하게 이야기 하고, 얌전히 있는 것이 올바르지 않은 행동이라니, 풀이로는 맘껏 드러내라는 식으로 적혀있었다.

... 일만 더 늘어나는 거 아니야...? 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지난 10/21 사 측 주관의 행사 이후 뒤풀이에서 나는 미친 듯한 자기 어필을 하고 있었다. 내년이면 다른 부서로 가는 것도 거의 기정사실화 된 부분인데 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직무로 가고 싶었다. 블로그 디자인, 개설, 관리가 가능하고 AI를 활용한 문서 작성이 가능하고, 무료 IP를 활용한 홍보물 제작에 능하며, 요리 또는 미술 활동은 강사가 없어도 직접 진행이 가능하고, 프로그램의 기획과 아이디어 선정에는 참신한 아이디어를 갖고 있다. 어딜 가든 다 잘 해낼 자신이 있고, 이제 들어온 지 7개월 된 현재 직장에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직 많고, 해보고 싶은 것이 잔뜩 있어서 이것저것 다 경험해 보고 싶다. 할 줄 아는 것이 늘어나는 것은 좋은 일이고, 지금도 할 줄 아는 것이 많아 올해 많은 경험을 했다. 하지만 난 일 중독, 일을 하지 않는 것이 무료한 사람이기에 더 배워나가고 싶다. 여기서 그러지 말라고 팀장님도, 타 부서원들도 말씀해 주시지만 저는 그 말은 크게 공감이 되지 않습니다. 열심히 하다 금방 소진 될 수 있지만, 일을 하는 저는 피곤해하는 순간은 분명 있을 것이고, 있었지만 번아웃 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던 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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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방학 기간에도 근로 학생이었고, 동아리에선 봉사 동아리장이었고, 21년엔 방역요원이었으며, 22년엔 상관을 잘못 만나 굴러다니던 군인이었던 나는 쉬는 법을 아직 못 배웠다. 쉬지 않고 일하며, 그 틈틈이 놀고 휴식하는 것. 그게 지금까지의 내 삶의 방식이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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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있으면 또 입동이다. 이젠 정말 정말 한 해 농사를 수확하고 어떤 결과물이 나왔는지 확인을 해야 한다. 단풍이 아름답다며 그저 바라만 보는 것도 좋지만 그 단풍마저도 겨울이 오고, 겨울 바람에 떨어져 나갈 날은 멀지 않았다. 나는 올해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떤 평가를 받을 수 있을지, 내 24년은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그려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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