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立冬

by 휘진

어느새 소설도 지나고 대설을 향해 가고 있지만 뒤늦게 입동을 기록한다.

이 매거진을 작성하면서 벌써 목표 달성은 실패했다. 앞 뒤 2주를 지나지 않는 선에서 글을 써내겠다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 정도로 바쁠 줄 몰랐지... 주말에 쉴 시간도 부족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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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입동 맞이는 나름 나쁘지 않았다. 휴가를 내고 왔더니 갑자기 연수를 가야 한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싶었으나 일단... 일단 뭐, 가서 나쁠 건 없으니까 갔다. "내가 왜 가야 해!", "가기 싫어!"라고 말도 해보고, 충남 공주는 있는데 왕자는 없냐며(...) 실성하긴 했지만 아무튼. 차라리 조금 더 빨리 갔으면 좋았을 것 같다. 단풍이 남아있을 때, 조금 덜 추울 때. 머리는 이제 감당이 되지 않아 앞 머리를 귀 뒤로 넘기고 다니고 있었고, 코트를 별로 입어보지도 못했는데 패딩을 입고 다니게 됐다. 시간이 언제쯤 이렇게 지났을까. 작년 10월 중순부터 11월 초까지 욕을 달고 지내던 강원도 인제가 벌써 1년 전의 일이 되었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운 추억은 아닌지라 그냥 덤덤했다. 당장에 내 계약 연장 여부가 내 주관심사였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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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을 깨고 나와 넓은 세상을 보는 건 항상 좋은 것 같다. 첫 해외여행이 그러했고, 첫 직장이 그랬다. 하지만 익숙해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고 나는 오만해져가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가게 된 연수는 좋았다. 다른 기관, 보다 전문적인 곳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내가 선망을 품을 수 있게 도왔고, 더 큰 꿈을 그릴 수 있게 해주니까. 하지만 나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런 욕심이 커지고, 또 커질 수록 잘 되면 패기, 잘 못 되면 객기라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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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독한 일벌레라는 걸 알았다. 예민하고, 점점 앞뒤가 막혀가는 것 같고. 아마 예민해서 앞뒤가 막히는 것 같긴 한데... 모니터 앞에서 짜증이 부쩍 늘었다. 회사 사람들과 일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좋았다. 그렇게 나오는 즉흥적인 아이디어들을 시험해 볼 수 있어 좋았다. 의무감, 애사보다는 그냥 천성이 그렇다는 느낌을 많이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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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입동 날씨로 한 해 추위를 점친다고 하는데 올해는 어쩌려고 그러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 11월 8일은 그렇게 춥지는 않은 날씨였고, 그 다음인 9일도, 10일도 그러했다. 근데 왜 추운 것인지... 벌써 내일은 두 번째 비 소식이 예보됐고, 오전 영하권의 날씨가 어색하지 않다. 분명 같은 날인데 급격한 기온 변화까지. 어쩌면 절기라는 것이 사라질 날도 그렇게 머지 않은 것 같다고도 생각한다. 여름의 눈이 시린 푸른 하늘도, 조금 더 밝아 조금 더 높은 듯 보이는 가을과 겨울의 하늘도 나는 아직 좋은데 해를 거듭할 수록 계절은 두 가지의 색채만이 그 힘을 얻어 간다. 첫 추위일 소설이 더 이상 첫 추위가 아니게 된 것처럼, 봄도 가을도 더 이상 봄과 가을이 아니게 될까?

안정적이었던 11월 8일까지의 생활, 나는 조금 더 계절을 곱씹으며 입동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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