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 小雪

by 휘진

올해 첫 눈은 지난 11월 22일 소설을 5일 앞으로 두고 있던 11월 17일에 처음 내렸다.

어딘가에선 이미 첫 눈이 내렸겠지만 내가 사는 서울에서의 첫 눈. 쌓일 만한 눈도 아니었고 거의 비처럼 내렸다. 약간 굵은 소금 정도의 크기인 그 눈은 겨울의 낭만 같은 느낌은 전혀 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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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항상 눈 앞에 있는 어떤 것에 진심으로 집중한다. 내가 무엇을 하던 간에, 하고 있기 때문에 깊은 관심을 가지는 게 아니라 나는 내가 주로 겪는 그 상황에서 거의 동화된다고 느낀다. 책임감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 것은 아마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나는 바보 같이, 내 것을 뒤로 미룬 채 남을 돕는 것을 우선으로 두고, 집착에 가까운 책임감으로 내가 연관되어 있는 모든 일에 열심히 하려 든다. 나쁜 건 아니지만 정도가 없기에 나는 아직도 내가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통해서 나에 대한 평판을 듣던, 직접 듣던 나는 내가 잘하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1인분. 그것조차도 기대하기 힘든 사람이 많다고 하지만, 그럴 수 있는 사람들만 남아 있기 때문에 회사가 굴러갈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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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눈이 내린다는 대설을 앞둔 첫 눈의 소설. 물론 대설도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겨울 절기는 하나 같이 다 틀려먹었다. 대설에도 큰 눈은 내리지 않았고, 이번 주 여러 차례의 비가 내리기 전까지는 코트만 입고 다녀도 될 정도로 날씨는 따뜻했다. 지난주 주말의 경우에는 거의 봄이었다. 바로 지난주가 대설이 있던 그 주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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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지난 이후부터 대설이 지나기 전까지는 참 복잡한 주간이었다. 캠프 하고 돌아왔지만 빨리 끝내야만 했던 일이 있었고, 그 다음주에는 전체 행사가 있었고, 그 다음주에는 회계 상의 업무를 모두 끝내야만 했고, 그 다음주에는 모든 결과 보고가 나와야만 했다. 일정을 확인하고 확인 할 수록 나는 일을 못하는 사람인 것만 같다는 자괴감이 나를 갉아먹기 시작했고, 나는 이 자괴감이 내 능력과 발전에 그 어떤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할 것 같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만큼은 다행이었기에 이 흑색의 감정 분출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직 발버둥 치고 있는 중이다. 밀물에서 도망치기 위해, 그러다 보면 어느새 물이 빠져나가는 시간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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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노를 저을만한 물에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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