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입하(立夏)

by 휘진

어느새 여름이 다가왔다. 이번엔 부디, 이 결심이 바뀌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 가지 결정을 내렸다.

2027년 3월, 또는 4월까지. 경력을 연 단위로 깔끔하게 맞춘 뒤 퇴사할 것이다. 더 이상 이곳에서 일을 하고 싶지 않아진 마음에, 싫증보단 지침에, 소모보단 소진에 내린 결정이다. 이직보단, 내 쉼에 초점을 두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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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에 한 번씩, 또는 절기마다 꼭 한 번씩 써내었던 2023년의 시리즈와 달리, 제목의 절기는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그렇게 글을 써내니 벌써 입하가 왔다. 시간은 너무도 빨라서, 정신 차릴 틈도 없이 5월로 접어들었는데, 이러한 변화에도 크게 요동치지 않음에, 감정의 무뎌짐에, 무뎌졌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아프지 않음에 많은 것들이 뒤섞였음에도 잔잔한 감정이 들게 만든다. 많은 것이 뒤섞였지만 혼란스럽지 않다. 혼란스러워할 필요도 없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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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25년? 여름을 사랑하지 않는다. 내가 좋아한 여름은 이미 없어진 것이다. 그리 글을 써내었던 기억이 있지만, 역시 아닌 걸까. 봄의 벚꽃은 한순간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아니, 실제로 한순간이겠지. 어떤 계절이든 마찬가지이겠지만. 내게 봄은 새 시작과 벚꽃, 그것 말고는 어떠한 색채나 이미지가 떠오르지 않는 계절이다. 그 시기에 연애를 한 적도, 사랑을 한 적도, 감정적으로 순탄했던 적도 그다지 있지 않았으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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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으로, 여름은 너무 많은 기억들이 있다. 내가 인정받고, 사랑받고, 찍어 낸 모든 사진들이 버릴 것이 없었고, 땀이 흐르는 것 따위 아무것도 아닐 정도였고, 좋지 않은 무릎이어도 자전거를 서너 시간씩 타며 한강을 만끽했었고. 그 기억에 최근 5년간의 말도 안 되는 여름마저 좋아할 수 있었지만, 그 기억으로만 여름을 살아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난 정말, 여름을 사랑했었고, 사랑하고 있나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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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벼운 옷차림, 어두운 조명의 카페에도 들이닥치는 밝은 햇살, 유리창에 반사되어 내 눈앞에 반짝거리는 햇빛, 검은색 아스팔트마저 하얗게 보이게 만드는 12~16시, 초록색 잎으로 무성해진 나무, 시들어 떨어져 갈색이 되어버렸지만 거리에 일부로 남아있는 봄의 잔여물, 그럼에도 무채색인 사람들의 색채와 붉은 벽돌의 건물들. 다른 여름보단 사실 5~6월의 여름을 특별히 사랑했다. 어느 계절에도 느낄 수 있지만, 여름에서 밖에 느껴지지 않는, 누군가에겐 이 감상이 봄과 가을일지도 모를, 그렇지만 비로소 매년, 내가 피어나는 계절은 항상 여름이었다. 이 시기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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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을 이야기할 때엔, 항상 말이 많아진다. 말조차 풀어내지 못하여 글을 황급히 마무리한 것만 같은 2주 전과는 또 다르다. 계절에 예민한 나는, 여름만큼은 예민이 아닌 섬세함을 다룰 거야.

토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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