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한에 얼어 죽은 사람 있어도, 대한에 얼어 죽은 사람 없다.
1월 6일, 2023년의 첫 절기가 찾아왔다. 항상 대한보다 추웠던 소한이라고, 겨울다운 겨울이라고 어젯밤에는 굵은 눈까지 펑펑 내리면서 존재감을 알렸다. 아침부터 바람이 불고 평소보다 쌀쌀한 게 안전 문자가 오지 않았더라도 눈이 오겠구나 직감할 수 있겠다 싶을 정도였다. 2023년은 아주 당연하게 1월 1일이 그 시작이었지만 각각의 계절과 분기를 절기로 세어가는 내게는 소한이 1월 1일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
부제는 소한 풍속의 속담으로 정하였다. 한국에선 실제로 대한보다 소한 무렵이 더 추운 것도 사실이나, 봄이 곧 올 것임에도 아무 준비를 하지 않거나 어떤 이론에 빗대어 변명을 하는 사람에게 그것으로 전부를 판단하지 말라 경계하는 의미로도 쓰인다. 절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모든 절기의 풍속과 관련 속담을 보았다. '덥고 추운 것도 추분과 춘분까지이다.'라는 춘분의 속담도 좋아하지만 보다 현실적인 말을 좋아하는 내 성격에는 소한의 속담이 더 와닿았다.
소한이 다가오고 무슨 글을 적어 내려 갈까 생각하면서 작년을 전체적으로 돌아보게 되었다. 휴대폰의 메모장이나 블로그에 종종 나오던 표현은 '내가 지키지 않고 있었다.', '알면서도 그러지를 못했다.' 같은 느낌의 문장들이었다. 2022년의 나는 아마 '비겁하며, 변명하고 도망치다 결국은 발길을 돌려 맞서기로 한 사람'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속담과는 다소 다른 의미일지는 몰라도 작년의 나는 나를 두둔하고 변명하기 바빴다. 누군가와 무언가를 내 책임 아래 두고 싶지 않았고, 희생을 하긴 했지만 내가 받을 피해 정도를 계산하는 그런 사람. 그래서 정했다. 내 목표와 정하게 된 동기가 다소 즉흥적일지는 몰라도 올해 커다란 목표를 정하는 것은 스물네 마디를 가슴 따뜻이 보내기 위해 아주 중요한 첫 단계라고 말하고 싶다.
2022년의 끝에서, 조금 더 솔직해져도 된다는 글을 썼다.
내가 나 자신에게 부끄럽지 않게, 쓴 글을 책임지는 사람이 될 수 있게, 다음 소한까지는 꼭 한 발 더 걷는, 손 한 번 더 내미는 사람으로 살아보자.
무섭고 두려워 다리를 떨고 주저앉을지라도 거기서 멈추지 않는 사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