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서 그냥 한두 달 살고 싶은 도시를 꼽자면 포르투갈의 포르투, 오스트리아 비엔나, 스페인의 바르셀로나, 크로아티아의 스플리트, 슬로베니아의 류블냐나, 조지아의 트빌리시 등이 있다.
체코의 프라하 여행을 마치고 프라하 역에서 열차를 타고, 4시간 30분 걸려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중앙역에 도착하였다. 7월의 동유럽은 해가 길어서 여행시간도 길게 늘려 잡을 수 있어서 좋다.
PRINZ EUGEN 호텔 체크인한 뒤 짐을 풀어놓고 천천히 비엔나 여행을 시작하였다.
오스트리아를 지도에서 찾아보면 바다가 없는 산악 내륙 국가로독일, 체코, 슬로바키아, 헝가리, 슬로베니아, 이탈리아, 스위스, 리히텐슈타인 등 8개나 되는 나라들과 국경을 마주하고 있다.
지형적으로는 알프스산맥이 감싸고 있으면서 중앙으로는 다뉴브강이 흐르는 천혜의 자연유산을 지닌 축복의 나라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 요한 슈트라우스, 루트비히 판 베토벤, 프란츠 페터 슈베르트, 요하네스 브람스 같은 세계적인 음악가를 낳은 음악의 나라이기도 하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비엔나는 음악의 도시이면서 유럽의 가장 오래된 고도로서 한때 신성로마제국의 수도로 번영을 누렸던 도시이다. 1440년 합스부르크 왕가가 이곳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정치와 예술, 문화의 중심지로서 도시의 유구한 역사만큼 화려하고 웅장한 건축물들이 여행자들의 눈길과 마음을 잡아끄는 곳이다.
직접 구경하려는 명소들은 크게 링과 링 밖의 외곽지역으로 구분되지만 링 지역은 도보로 이동이 가능하고 그 외의 명소들도 링을 따라 트램을 타고 다니면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비엔나에서 반지 형태의 링이란 도시의 중심부를 경계짓는 도로로 원래는 성벽이었는데 프란츠 요제프 1세의 주도로 성벽을 허물고 순환도로를 만들었다. 링의 총길이는 5.2km이고 합스부르크 제국의 수도에 걸맞는 역사적인 장소들이 링 안에 남아있어서 유네스코 세계유산 역사 지구로 지정되었다.
비엔나의 구시가지를 돌아보는 데는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는다. 도시 전체로 보면 23개 구로 나뉘지만, 구시가지인 1구에 중세 도시의 명소 대부분이 위치하고 있다.
우리는 링의 중앙부에 있는 성 슈테판 성당을 비엔나 여행의 기점으로 삼아서 성 슈테판 광장에서 출발해서 제일 먼저 비엔나의 번화가인 그라벤 거리를 둘러 보았다. 길 한복판에 흑사병으로 사망한 10만 명의 넋을 달래는 페스트 탑이 있다. 탑 주변으로 거리의 악사들이 추모 성격의 페스트 탑과는 무관한 연주를 하고 있었고, 탑 주변의 계단 턱에 걸터앉아 한가롭게 음악 감상을 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이 편안해 보였다.
그라벤의 거리를 걷다 보면 왠지 유럽의 부자 동네에 와 있는 호화로운 느낌이 든다. 그야말로 도로변의 건물이나 거리의 사람들도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그라벤 거리 끝자락에서 남쪽으로 한 블록을 걸어가면 남쪽의 드넓은 영웅 광장 잔디밭 앞에 비엔나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이 두 팔을 벌리듯 버티고 서 있다. 이 왕궁은 20세기 초까지 합스부르크 왕족들이 사용하던 거처로 2천 6백개나 되는 방이 있고, 신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 등이 혼재된 형태로 완성되었다.
왕궁은 구왕궁과 신왕궁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구왕궁에서는 비엔나 소년 합창단의 성가를 들을 수 있는 예배당과 시시 박물관 등이 있고, 신 왕궁에는 각종 박물관과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스페인 승마학교, 대통령 집무실 등이 있다.
왕궁 남쪽의 드넓은 잔디 광장은 삼삼오오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시민들의 모습을 볼 수 있었는데 이곳은 시민들의 단골 집회 장소로도 이용되는 곳이다.
비엔나의 두 번째 날도 성 슈테판 성당에서 시작하였다, 어제는 광장과 겉모습만 보았지만 오늘은 내부로 들어가서 성당을 자세히 둘러보았고, 남쪽 첨탑에 올라가서 비엔나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성당의 북쪽 첨탑은 엘리베이터가 있고,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큰 종을 볼 수 있다.
성 슈테판 성당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처럼 종교행사와 국가 의전을 치루었던 공간이다. 모차르트의 화려한 결혼식과 초라한 장례식이 이 성당에서 치루어 졌다.
성 쉬테판 성당은 화려한 모자이크 문양의 지붕과 고딕식 첨탑이 우뚝 솟아 있어서 비엔나의 상징이면서 이방인 여행자들에게는 이정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그라벤 거리와 직각으로 만나 남쪽 방향으로 약 600m 정도 남쪽으로 뻗어있는 케른트너 거리 역시 비엔나의 중심거리이다. 보행자 전용도로인 이곳에는 유럽의 유명 상표 전문 매장과 기념품을 판매하는 상점, 낭만적이고 고풍스러운 카페와 레스토랑이 줄지어 있다.
이 거리의 남쪽 끝에 국립 오페라 극장이 자리 잡고 있다. 이 국립 오페라 극장은 비엔나에서 음악과 예술의 심장부로서 파리의 오페라 극장, 밀라노의 스칼라 극장과 함께 유럽의 3대 오페라 극장에 꼽히고 있다. 이러한 명성에 걸맞게 오스트리아 하면 비엔나 소년합창단, 비엔나 필 하모닉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오케스트라가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로마와 파리 여행 때도 그렇고,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내부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지만 비엔나까지 와서 오페라를 직접 보지 못하고 외관만 보고 가는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2015년부터 인도 뭄바이 현장에서 2천석 규모의 극장이 포함된 복합 프로젝트의 현장 소장으로 근무하면서부터는 미리 예약을 해서 오페라 극장 내부 시설도 둘러볼 겸 공연도 직접 관람하기 시작하였다. 러시아 모스크바의 볼쇼이 극장, 노르웨이 오슬로 오페라 하우스,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 시립극장 등에서는 직접 오페라를 관람하였다.
영웅 광장과 길 하나 사이의 남쪽으로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이 있다. 마리아 테레지아 광장을 중심에 두고 양측으로 자연사 박물관과 미술사 박물관이 있다. 특히 비엔나의 미술사 박물관은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과 스페인의 프라도 미술관과 함께 유럽의 3대 미술관으로 꼽힐 정도로 세계 미술사에서 유명한 작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트램을 타고 이동해서 시청 광장을 중심으로 시청사 건물과 왕궁 극장을 둘러보았다. 시청 광장에는 매년 여름밤에 필름 페스티벌이 열려서 객석으로 사용되는 간이 의자가 빼곡히 들어서 있었고, 대형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낮시간에 찾아갔기 때문에 텅빈 모습만 보아야 했다.
오후에는 쉰부른 궁전을 둘러 보았다. 쇤브룬 궁전은 비엔나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명소 중 한 곳으로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과 비교되는 웅장한 규모의 아름다운 궁전이다. 쇤브룬이란 이름은 1619년 마티아스 황제가 사냥 중 아름다운 샘을 발견한 데서 유래하였다. 궁전 건물을 지나 약 1.7㎢ 에 달하는 광대한 정원이 있는데, 기하학적 구성의 아름다운 화단, 수많은 분수와 조각상 등이 어우러진 멋진 정원을 지니고 있다. 비엔나의 거리와 숲을 배경으로 한 궁전과 정원의 전망이 일품이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궁전의 앞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 겨울 시즌에도 인기가 많은 관광명소이다.
저녁에는 도나우 강변에 있는 맛집 레스토랑인 STRAND CAFE를 찾아가서 맥주와 슈니첼, 바비큐 소스를 발라 구운 립 요리 등으로 온 가족이 외식다운 외식을 하였다.
비엔나에 오기 전부터 생각했던 비엔나 커피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비엔나 커피의 맛에 부합하는 커피는 있는데 에스페르소에 물과 설탕을 넣은 후 생크립을 얹은 아인 쉬페너가 비엔나 커피와 가장 흡사하였다. 한 마리의 마차가 끄는 마차라는 뜻으로 마부가 주인을 기다리는 동안 설탕을 젓지 않고 마실 수 있게 고안한 커피라는 설이 있다.
비엔나에서 마시는 커피로는 블랙 커피에 거품이 나는 뜨거운 우유를 부어 나오며 이탈리아의 카푸치노와 비슷한 멜랑제와 우리가 알고 있는 비엔나 커피와 비슷한 아인슈패너, 그리고 에스프레소에 휘핑 크림과 쵸코 시럽이 함께 나오는 흔히 모카 커피로 알려져 있는 슈바르쪄 등이 있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도나우 강변을 따라 요한스트라우스의 왈츠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를 떠 올리며 한가로이 산책을 하면서 비엔나에서의 둘째 날 여행을 마무리 하였고 셋째날 이른 아침에 헝가리 부다페스트를 향해 열차를 타고 비엔나를 출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