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파정 미술관

by 박홍섭

28. 석파정 미술관

2016년 1월 23일, 금요일


문득 얼마 전 유투브 채널에서 소개한 ‘석파정 미술관’의 천경자 작고 10주기 기념 전시가 열리고 있는 ‘석파정 미술관 소개’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1월 25일까지 전시를 하기 때문에 평일로는 오늘밖에 기회가 없었다. 네이버 지도로 ‘석파정 미술관’을 찾아보니 사무실 근처의 경복궁 역 앞 버스 정거장에서 불과 4 정거장이라서 9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에 있었기에 오후 시간에 퇴근을 조금 앞당겨 ‘석파정 미술관’으로 향했다.


이번 주 내내 동장군이 기승을 부리고 있었고, 낮 기온이 아직도 영하에 머물고 있었지만 하늘은 쾌청한 편이었다.


자하문로에 있는 지하철 경복궁역 3번 출구 앞에는 두 개의 3개의 버스 정류장이 있다. 수송동 계곡으로 가는 마을버스 9번 정류장이 제일 먼저 있고, 다음은 공항버스 정류장, 그리고 맨 마지막에 일반 노선버스 정류장이 있다.


인왕산 초소 책방을 가려면 마을버스 9번을 타야 수송동 계곡으로 가기 때문에 그동안 많이 이용했던 터이지만, 자하문 터널쪽으로 가는 일반 노선버스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7018번 버스를 타고 네 정거장 남짓, 자하문 터널을 빠져나오자마자 길 건너편에 석파정 미술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석파정 미술관’의 외관은 북악산과 인왕산 자락의 산세와 잘 어우러진다고 말하기는 어려웠다. 산의 능선이 만들어 내는 완만한 흐름 속에서 건물은 지나치게 직선적이고 단단한 태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경사진 지형을 따라 자연스럽게 놓이기보다는, 언덕을 깎아낸 자리에 구조물을 얹어 놓은 듯한 느낌이 강했다.


겨울 산의 거친 바위와 나무 사이에서 콘크리트 벽면은 유난히 이질적으로 눈에 들어왔다. 특히 콘크리트 벽면의 세로 패턴은 언덕의 경사를 따라 흐르기보다는, 그 흐름을 거슬러 올라가는 듯 보였다.


자연이 수평과 곡선으로 만들어 낸 풍경 속에서, 이 인위적인 수직선은 주변과 대화를 나누기보다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선을 긋는 느낌을 주었다. 여기에 더해진 약간 그린 톤의 유리 벽면 역시, 자연과 자신을 구분 짓는 경계처럼 보였다.


이런 외관은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겠지만, 주변 풍경과 완전히 호흡을 맞추지 못한 채 서 있는 건물로 읽혔다. 자연을 끌어안기보다는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튀는 듯한 그 태도가, 이 장소에 들어서기 전부터 묘한 긴장감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바깥의 겨울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이번 전시는 천경자 화백의 작고 10주기를 기념해 마련된 회고전으로, 작가의 대표적인 채색화를 중심으로 그의 화업 전반을 조망하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전시장에는 인물화, 이국적 풍경, 식물과 동물을 소재로 한 작품들이 시기별로 배치되어 있었다.


천경자의 작품은 강렬한 원색과 장식적인 화면 구성이 특징적으로 보여졌다. 화면 속 여인들은 정면을 응시하거나 시선을 살짝 비켜 두고 있었고, 짙게 강조된 눈매와 선명한 색채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표현은 작가가 일관되게 추구해온 화풍으로 느껴졌으며, 여성 인물과 내면의 감정을 주요 주제로 삼아 왔음이 작품을 통해 드러났다.


또한 해외 체류와 여행 경험을 바탕으로 한 이국적인 식물과 동물, 풍경이 다수 등장했다. 이 요소들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화면을 구성하는 중요한 조형 요소로 사용되고 있었고, 천경자 특유의 색채 감각이 더욱 분명히 보여졌다.


전시는 천경자가 한국 채색화 분야에서 독자적인 위치를 구축해 온 작가였음을 확인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었다. 작품 앞에 서 있을수록 색채의 밀도와 반복되는 시선의 표현이 자연스럽게 관람자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고, 전시장은 바깥의 계절과는 분리된 하나의 세계로 느껴졌다.


관람을 마치고 4층 미술관 건물의 옥상 외부로 나오자,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졌다. 현대적인 미술관의 실내 전시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조선 후기의 시간처럼 느껴지는 흥선 대원군의 별서 건물이 조용히 그 자리에 머물고 있었다.


안채와 사랑채, 별채로 이루어진 살림채는 계곡의 지형을 따라 낮고 단정하게 배치되어 있었고, 건물 전체는 권세를 드러내기보다는 은거와 휴식을 염두에 둔 별서의 성격을 담담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흥선대원군의 별서는 처음부터 그의 공간은 아니었다. 이곳은 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세도가 김흥근이 지은 별서로, 잠시 머무는 별장이 아니라 비교적 오랫동안 거주할 수 있도록 마련된 집이었다.

김흥근은 계곡과 바위가 어우러진 이 자리에 삼계동 정사라 이름 붙인 별서를 짓고 머물렀다. 지금도 집 옆 바위에는 ‘삼계동’이라는 각자가 남아 있어 당시의 흔적을 전하고 있다. 개울가 바위에는 권상하가 새긴 ‘소수운련암’이라는 글씨가 남아 있는데, 이곳 풍경이 얼마나 시적 감흥을 불러일으켰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흥선대원군 이하응은 이 별서를 오래전부터 탐내며 김흥근에게 여러 차례 매입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그러다 임금이 된 아들 고종과 함께 이곳을 방문해 하룻밤을 묵게 되었고, 유교 예법상 임금이 머문 집에 신하가 계속 살 수 없다는 관례에 따라 결국 김흥근은 이 별서를 이하응에게 넘기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하응은 이 공간을 각별히 아꼈다. 사방을 둘러싼 바위산의 풍경에 매료되어 자신의 호를 ‘석파’로 바꾸었고, 집 앞 계곡의 정자에 석파정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후 이 별서는 흥선대원군의 취향과 정치적 삶의 그림자가 함께 스며든 공간으로 남게 되었다.


별서 건물 앞쪽으로는 계곡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물은 보이지 않았다. 바닥에는 얼음이 넓게 깔려 있었고, 계곡은 흐름을 멈춘 채 겨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얼어붙은 바위 사이로는 물소리 대신 고요가 내려앉아 있었고, 계곡을 따라 놓인 바위에는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얼음 위로 드러난 바위글은 자연과 시간, 인간의 흔적이 한 자리에 겹쳐진 증거처럼 보였다.


별서에서 조금 떨어진 곳의 계곡 끝자락에 있는 석파정의 바닥은 화강암으로 단단히 마감되어 있었고, 기둥에는 장식적인 벽이 덧붙어 있었다. 지붕의 형태 역시 익숙한 한옥과 달리 중국풍의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었다. 처음 보는 방문자의 눈에도 이 정자는 조선의 정자라기보다, 낯선 세계를 끌어들인 실험처럼 느껴졌다.


중국풍의 정자는 화려한 장식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장식조차 겨울의 공기 속에서는 차갑게 식어 보였지만, 아마도 여름에는 바위 아래로 물소리가 살아나고, 정자 안에는 그늘과 바람이 머물렀을 것이고, 가을에는 단풍이 주변 산자락을 물들이며, ‘유수성중관풍루’라는 이름이 비로소 제자리를 찾았을 듯 싶었다.


석파정을 지나 조금 더 언덕을 오르자, 시야를 막듯 커다란 바위산이 마주했다. 인위적으로 손댄 흔적 없이 그대로 드러난 바위산은 정원의 끝이자 시작처럼 느껴졌고, 그 앞에 서니 발걸음이 잠시 멈추었다. 바위 표면에는 겨울빛이 낮게 스치며 옅은 음영을 남기고 있었고, 그 굴곡마다 시간이 쌓여 만들어낸 결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말없이 서 있는 바위산은 계절의 변화와 사람의 발걸음을 모두 받아들이며, 이 장소의 중심을 오래도록 지켜온 존재처럼 느껴졌다.


바위산 앞에는 누군가 하트 모양으로 가지런히 쌓아놓은 낙엽이 남아 있었다. 생색내지 않은 작은 흔적이었지만, 그 장면 덕분에 겨울의 풍경은 한층 부드러워졌다. 색을 잃은 계절 속에서 낙엽은 마지막 온기처럼 남아 있었고, 차가운 바닥에 놓인 그 형태는 이 공간이 여전히 사람의 감정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말해주는 듯했다.

바위산을 끼고 돌아가듯 이어지는 산책로는 억지로 길을 낸 느낌이 없었다. 발밑의 경사는 완만했고, 동선은 바위의 윤곽을 따라 자연스럽게 몸을 맡기게 했다. 산책길의 끝에서 신라 삼층 석탑이 모습을 드러냈다.


화려하지도, 크지도 않았지만 오래 버텨온 것만이 가질 수 있는 단단함이 느껴졌다. 탑은 주변 풍경을 압도하지 않고, 오히려 한발 물러서 모든 것을 지켜보는 존재처럼 서 있었다. 석탑 근처에서 계곡 아래를 내려다보니, 얼음으로 덮인 계곡 건너편으로 흥선대원군의 별서 건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담장과 지붕선, 그리고 그 앞에 선 소나무까지, 건물은 자연 속에 파묻히듯 자리하고 있었다. 산과 바위, 정자와 살림채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고 어깨를 맞댄 풍경이었다. 그 순간 이곳은 정원도, 유적도 아닌 하나의 완성된 장면으로 느껴졌다.


석탑 앞에 잠시 머물다 다시 길을 돌려 내려왔다. 바위를 끼고 이어지던 산책로를 따라 걸음을 옮기자 시야가 서서히 열리며 흥선대원군의 별서 건물이 정면으로 다가왔다. 별서 앞에 서 있는 천세송은 이 공간의 시간을 대신 말해주는 존재처럼 느껴졌다.


수백 년을 견뎌왔을 법한 굵은 줄기와 뒤틀린 가지는 겨울 햇빛을 받아 묵직한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고, 그 앞에 서자 이 집이 품어온 세월의 두께가 자연스럽게 전해졌다. 사람의 발걸음과 정치의 굴곡, 계절의 반복을 모두 지켜본 나무처럼 보였다.


고개를 들면 북악산 자락이 곧바로 이어졌다. 산의 능선 아래로는 부암동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화려하지 않은 낮은 지붕과 담장들이 산의 경사에 기대어 자리 잡고 있었고, 도심과 산촌의 경계가 이곳에서는 유난히 부드럽게 이어지고 있었다. 겨울 오후의 빛 속에서 그 풍경은 소란스럽지 않았고, 오히려 조용히 숨을 고르는 듯 보였다.


이렇게 오늘의 여정은 석파정 미술관에서 시작해 바위와 길을 지나, 다시 별서 앞에서 마무리되었다. 전시장 안의 강렬한 색채와 바깥의 얼어붙은 계곡, 그리고 산과 집들이 겹쳐진 풍경이 한 겹씩 쌓이며 하루를 완성했다. 잠시 다녀온 산책이었지만, 오늘의 부암동은 오래 머물다 나온 곳처럼 마음에 천천히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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