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

천경자 여행에세이를 읽고서

by 박홍섭

#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

광화문 사무실에서 근무하면서,

점심시간이 되면 자주,

서울시립미술관에 들르곤 했다.


바쁜 업무 속에서 잠깐 미술관에 들르는 일은

하루의 호흡을 고르는 작은 쉼표 같은 시간이었다.

그곳에는 천경자 화백의 작품이 자주 전시되고 있었다.

그녀는 생전에 93점의 작품을 이 미술관에 기증했는데,

그 덕분에 전시가 바뀔 때마다 자연스럽게

다시 만나게 되는 그림들이 되었다.

몇 번이고 본 그림이었지만 이상하게도

볼 때마다 다른 감정이 일어났다.


강렬한 색채와 이국적인 분위기,

그리고 인물의 깊은 눈빛은 늘 묘한 여운을 남겼다.


지난 1월 23일에는

석파정 서울미술관에서 열린 작고 10주기,

탄생 101주년 기념 전시를 보러 갔었다.


전시장에는 그녀가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그린 그림들이 전시되어 있었는데,

이국적인 풍경과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화가의 시선과 감정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했다.


전시를 끝내는 한쪽 방에는

그녀가 출간한 책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서 특히 눈길을 끈 책이 바로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였다.

그녀가 세계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그린 그림들과 그 그림들에 담긴 이야기,

여행의 감정과 사유를 기록한 에세이였다.


전시장에 전시된 세계 여행 그림들을 보고 난 뒤,

그림 속 작가의 생각과 여행의 이야기를

글로 옮겨놓은 에세이라서 더욱 읽어보고 싶은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이미 오래전에 절판된 책이라

일반 서점에서는 구할 수 없었다.

그 이후로 틈날 때마다 중고 서점 사이트를 찾아보며

그 책이 올라오기를 기다렸는데

마침내 중고 사이트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가격은 10만 원이라서 잠깐 망설이긴 했지만

다시 만나기 쉽지 않을 것 같아 결국 주문했다.

이미 40년 전인 1986년 11월에 출간된 책이었다.


며칠 뒤 택배 상자가 도착했는데,

잘 포장된 상자 속에 책을 꺼내 보니

생각보다 상태가 매우 양호했다.

종이는 약간 빛이 바래 있었지만 페이지는 깨끗했다.


마치 오랫동안 누군가의 서가에서 조용히 보관되어 있다가

이제야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온 것 같았다.

오래된 종이에서 풍기는 은은한 냄새마저도

그 세월을 말해주는 듯했다.


옛날 책이라 글씨 크기가 8포인트로 작아서

눈이 피곤해서 오랫동안 읽을 수가 없어서 짬짬이

읽어야 했다.


책 제목 :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

부제 : 혼자 떠난 여행 에세이


뒷표지 글 : 恨과 優秀의 화가 千鏡子 旅行 에세이

“보고 싶은 어머니는 드디어 모녀의 탯줄을 끊고

지난 봄 영원한 세계로 떠나셨다.

이 나이에 비로소 걸음마를 시작해야 되는

나 혼자 어이없이 살아야 하는

이 아파트가 정말

부에노스 아이레스나 타국의

모텔 같기만 해서 허무한 생각이 든다.

어차피 나는 태어날 때부터

으스스 추운 몸, 추운 생애,

‘에어포트 인생’이었는지도 모른다”


천경자의 여행 에세이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향하여’를 읽다 보면,

일반적인 여행기와는 전혀 다른

긴장과 노동의 흔적이 느껴진다.


지금의 일반적인 여행은,

휴식과 관람의 시간이지만,

천경자 화백에게 여행은 또 하나의 작업실이자

치열한 창작의 현장으로 비춰진다.


그녀의 여행은

단순히 낯선 풍경을 보는 일이 아니라,

그 풍경 속으로 깊이 들어가,

삶과 인간을 관찰하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생전 처음 가는 낯선 나라에서

대사관과 연락해 이동을 준비하고,

현지에서 도움을 줄 지인을 찾아가야 하며,

숙소 역시 스스로 정해야 했다.


여행 자체가 이미 쉽지 않은 과제인데,

어디를 가든 인물이나 풍경을 모델 삼아

오랜 시간 스케치를 해야 하고,

때로는 현지인에게 모델이 되어 달라고 부탁하거나

모델료를 지불하기도 했다.


낯선 언어와 문화 속에서 사람을 설득해

그림의 모델이 되어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을 보면서,

화가로서의 여행이 얼마나 고단한지 짐작할 수 있다.


또한 이 에세이에서

여행지의 색채와 공기,

사람들의 표정과 거리의 분위기가

매우 섬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이는 단순한 감상이 아니라,

그날그날의 경험을 기록하고,

메모해 두었기에 가능한 표현일 것이다.

하루 동안 본 풍경과 만난 사람들,

느꼈던 감정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밤마다 기록을 남겼을 작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그림을 위한 스케치와 글을 위한 기록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여행이었던 셈이다.

이러한 과정을 생각하며 책을 읽다 보니,

천경자의 여행은 단순한 이동이 아니라

‘영혼을 울리는 바람’을 찾아가는

긴 여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파리에 도착해서는

“그동안 부피가 늘어난 스케치 북이니

화구 등의 무게로 주체를 못하여,

그것들을 짐수레에 싣고,

내 손으로 밀면서 택시 타는 곳까지 가는 동안

수레바퀴가 말을 듣지 않아 진땀을 뺏다.

말이라곤 겨우 일본 말이 통해서 그 덕을 볼 수 있었다.”라고

서술하는 모습에서 고단한 여행을 일부를 느낄 수 있다.

낯선 길을 두려워하지 않고 스스로 길을 만들며,

사람과 풍경 속에서 예술의 영감을 발견하려는 집요함이

이 책의 곳곳에서 느껴진다.

그녀(화가)의 여행이 얼마나 많은 준비와 노동,

그리고 예술적 집념 위에서 이루어지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여행이 일반화되지 않은 1970년대에

낯선 나라에서 이동 경로를 찾고,

대사관이나 지인을 통해 도움을 구하며,

때로는 모델이 되어 줄 사람을 설득하고

비용까지 지불해야 하는 상황들을 떠올리다 보면,

그녀의 여행은 결코 가벼운 낭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절로 느껴진다.


특히 이 책을 읽으면서, 나 역시

그동안 혼자서 여러 나라를 여행해 보고,

여행기를 적어보고,

실제로 책을 쓰고 출간해 본 경험 때문인지,

글을 읽는 방식이 전과는 많이 달라졌음에

스스로 헛웃음을 쳐본다.


독자로서 풍경과 감정에 몰입하며 읽으면서도,

자꾸만 문장의 흐름이나 단어 선택,

표현의 결을 살피며 읽고 있는 모습이

마치 출판사의 교정팀 사람이 원고를 보듯이,

행간 사이를 따라가며 글자와 단어,

문장의 호흡을 하나하나 점검하고 있는

착각이 종종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오타하나, 띄어쓰기 한 군데도

틀린 부분을 찾지 못하면서,

이미 40년 전에 벌어졌을 작가와 출판사의

눈에 보이지 않는 교정작업이 상상이 되었다.

쉽게 쉽게 써 내려간 글처럼 보이다가도

‘아, 이런 표현은 이렇게 살렸구나’,

‘여기서는 감정을 절제하면서도 여운을 남겼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면, 어느새 독서가 아니라

글쓰기 공부를 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그런 읽기 방식 덕분에

오히려 천경자의 글이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화가가 여행지에서 느낀 감정과 풍경의 색채를

어떻게 문장으로 옮겼는지,

그리고 그림을 그리듯 글을 써 내려간 흔적이

어디에 남아 있는지 조금은

더 가까이서 바라보게 된다.

결국 이 책을 읽는 경험은

단순히 한 예술가의 여행을 따라가는 독서가 아니라,

여행을 기록하고 책으로 남기는 과정까지

함께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 되어 주었다.


독자로서 풍경을 따라가면서도,

한편으로는 글을 만드는 사람의 눈으로

행간을 들여다보는 묘한 독서를 하게 되었다.


책 속에는 둘째 딸인 미도파와

미국을 여행하는 내용 중에

값산 터키석 팔찌를 딸에게 사주려 했으나

한사코 사양하는 딸의 행동에서,

또 다른 어느 가게에서는 같은 딸이 엄마건 빼고

제 것, 나중에 만날 인연의 것, 그와 태어날 아이 것 등

세 켤레의 인디언 신발을 사는 것을 보면서

그녀의 마음속 허전함과 서운함을 숨김없이 토로한다.

그 감정은 노골적인 서운함이라기보다는,

어느 순간 부모가 겪게 되는 조용한 거리감 같은 것이었다.

딸의 독립을 기쁘게 바라보면서도,

동시에 그 독립이 만들어 내는 빈자리를 스스로 느끼는 마음.

그녀는 그 미묘한 감정을 솔직하게 글로 털어놓는다.


파리 근교를 여행하면서

호숫가 밤나무 숲에서 아무도 주워가지 않아

소복히 쌓인 밤을 일행과 함께 주우면서,

그녀와 함께 밤을 줍는 사람들이 모두

그녀의 가족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밤 한톨을 주울 때마다 간절해졌다고 적고 있다.


이 역시 그저 여행지에서 문득 느끼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단순한 외로움 이상의 감정처럼 다가온다.


밤을 한톨씩 주우면서도, 그녀가 살아온 삶의 시간들,

관계의 거리와 개인으로서 감내해야 했던 고독이

함께 스며든 마음으로 읽혀진다.


천경자 화백의 여행 에세이를 읽으면서

화가로서 강렬한 색채와 개성을 지녔던 인물이지만,

상처받고 서운해하는 평범한 어머니의 모습이

자주 드러난다.


어릴 적 천 화백이 ‘미도파’란 애칭을 붙여주며

애지중지 키웠던 둘째 딸은,

천경자 화백의 그림 곳곳에

자주 등장하는 소녀상의 모델이었다.

천 화백의 2남 2녀 남매들은 장성하기 전까지

어머니와 단란한 삶을 살았다.

남도에서 가장 예쁘다는 뜻의

‘남미장’으로 불렀던 큰딸,

‘후닷닷’이란 애칭을 붙여준 맏아들,

아기를 어를 때 나는 소리를 붙여

‘쫑쫑이’라고 불렀던 막내아들까지

생전에 천 화백이 그림과 더불어

생명처럼 가장 아꼈던 보물들이었다.


파란의 가족사와 미술계와의 투쟁,

작품의 진위 논란 속에서 화백은 큰 상처를 입고

해외에서 오랜 시간을 큰딸과 함께 보내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가족들과의 관계 역시

여러 이야기를 낳았다.


그런 후일의 사건들을 알고 책을 읽다 보면,

여행 중에 스쳐 지나가듯 기록된 모녀 사이의 작은 거리감이

마치 훗날의 어떤 균열을 예감하는 장면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그때의 글이 미래를 예견한 것은 아닐테지만

한 사람의 삶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바라보는 독자에게는,

여행 중에 남긴 짧은 기록 하나도

훗날의 기억과 겹쳐지며 다른 의미를 만들어 낸다.


그래서 이 책의 모녀 장면은

단순한 여행의 에피소드가 아니라,

예술가이자 어머니였던 한 인간의 복잡한 마음을

조용히 보여주는 장면으로 오래 남는다.

광화문에서의 점심 산책,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자주 마주했던 그림들,

그리고 석파정 전시장에서 보았던 그녀의 세계 여행 그림들,

그 그림들을 설명하는 한 권의 책이 더욱 귀하게 느껴진다.

천경자 화백의 뒷 표지 글처럼

‘한과 우수의 화가’는 그림으로 여행을 기록했고,

그 여행의 마음을 한과 우수를 담아

이 에세이 글로도 남겼다.


그래서 이 책을 펼쳐 읽는 일은

단순히 한 권의 오래된 수필집을 읽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함께 이어지는 또 하나의 여행을

따라가는 일처럼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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