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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muel Cheong Oct 18. 2019

엔릭 미랄레스의 건축 속 불확정적 공간

Indeterminate spaces of E. Miralles

  엔릭 미랄레스의 건축은 형태적으로 매우 유연하며 참신하다. 처음 그의 건축을 접한다면 이러한 요소가 먼저 다가와 그 형태가 담고 있는 의미는 간과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사용하는 모든 건축적 요소와 반복적인 요소는 그 의미를 갖고 있다. 그 의미를 파악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미랄레스의 건축을 이해할 수 있다.


  랄레스의 건축은 단순히 건축적 형태와 그것이 갖는 의미만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그의 건축은 주변과의 관계 혹은 시간(역사)과의 관계에 많은 참조적 요소를 갖는. 이를 통해 보다 의미 있고,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는 건축을, 그는 구현한다. 스코틀랜드 국회의사당과 바르셀로나의 산타 카트리나 시장은 주변과 광장 혹은 외부공간을 통하여 주변과 건축을 연결하는 그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할 수 있다.

ⓒ Grenavitar

  미랄레스는 주변과의 연속(연결)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건축물이 단순히 대지 위에 놓이는 것이 아닌, 대지의 융화되어 그 위에서 기능할 수 있기를 그는 희망한다. 이 가능성을 그는 광장에서 찾았다.


 "El edificio se desparece, haciendo una plaza."
 
  그의 건축에서, 광장은 ‘가능성’의 공간이다. 모든 행위가 가능한 공간이다. 사람들이 모이는 기능, 아이들이 노는 공간, 장터가 열리고 행사가 열릴 수 있는 공간이다. 특정한 용도가 정해져 있지 않고, 상황에 적합하게 용도가 정해지며, 그 역할을 수행한다. 이런 의미에서 미랄레스에게 광장은 들뢰즈와 가타리가 말한 ‘기관 없는 신체’와 같다. 이는 선입견이 배제된 창조성의 상태이며, 가능성이 내재된 상황이다. 이렇듯 가능성이 풍부하지만 특정 기능이 정해지지 않은 공간은 ‘불확정적 공간’의 하나로 정의할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불확정적 공간은 과거의 공간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과거 푸코가 정의한 사회는 규율과 복종을 통하여 그 의미를 갖고 존재하였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는 병원, 수용소, 감옥, 병영 등과 같은 공간들이 주를 이루며, 그 의미를 재생산해나갔다. 하지만 이런 사회는 사라졌고, 이제는 이와는 전혀 다른 사회가 나타난 것이다. 이제는 규율과 복종으로 정의되는 공간이 아닌, 참여자가 스스로 그 의미를 정의하고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 이용된다. 이런 의미에서 미랄레스가 보여주는 불확정적 공간(가능성의 공간)들은 현대 사회에 맞는 공간이라 볼 수 있다.


  스코틀랜드 국회의사당의 외부 광장을 그중 하나의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이 공간은 주변의 공원과 국회의사당 건물을 연결시켜주는 고리이며, 시민들이 와서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이 공간은 때로는 쉼터, 공연 공간 등으로 변하며, 그 요구에 맞게 그 역할을 바꿔나간다. 이와 같이 변화하는 공간은 이용자에게 항상 낯설게 다가간다. 불확정적이기에, 오늘은 익숙할지라도, 내일 새로운 용도로 사용되었을 때, 낯설게 다가선다.


  인간은 낯선 것과의 만남을 통하여 삶을 풍부하게 한다. 낯선 것 사이의 조우를 가능하게 하고 이를 가능하게 위해서는 반드시 어떤 만남의 공간이 필요하다. 이런 과정에서 광장은 다양한 역할을 맡게 되고, 이런 역할과 행위들이 누적되며, 더욱 풍부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광장으로 나타나게 된다. 개별 행위로써는 낯설지만, 이런 행위들이 누적되는 과정을 통하여, 공간은, 스스로 자신에게 맞는 DNA를 조합해 나간다. 이렇게 진화된 신체는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나 이용될 수 있는 가능성을 갖은 공간이 된다.

ⓒ Matthew Ross

  미랄레스는 내부 공간 역시 고정된 공간이 아닌 비교적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조성하였으며, 상층부에 조성된 공간과 같이, 이용자의 요구에 맞게 그 기능이 진화하는 공간을 계획화였다. 이는 모두 불확정의 공간이며, 가능성의 공간이다.


 바르셀로나의 산타 카트리나 시장 역시도 이런 불확정성을 잘 보여주는 예라 할 수 있다. 카트리나 시장은 단순히 기능 혹은 공간의 불확정성이 아닌, 시간의 불확정성이 잘 드러나 있다. 카트리나 시장은 과거의 시장을 재생하였다. 이런 과정 속에서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 사이의 관계가 모호하게 드러난다. 같은 장소, 같은 기능의 공간이 누적되는 것은, 시간을 이동하며 소통하는 것이고, 필연적으로 융합의 과정을 포함하게 된다. 여기서 발생하는 융합은 그 기능 혹은 공간을 보다 완벽하게 만들어준다. 위에서 말한 것과 같이 이런 융합과 누적의 과정은 공간의 진화를 유도하며, 보다 가능성 있는 공간으로 진화할 수 있게 해 준다.

ⓒ Boca Dorada

"The chance of talking about new and old creates the first ambiguity. The shape of the building has an intricate relationship with time. Perhaps we could experience in our Mercaders house something like living -again- in the same places as if inhabiting a place were not other than moving across a place's time."
 
  위 두 작품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미랄레스의 작품은 많은 불확정적인 공간을 포함하고 있다. 이는 현대 사회의 공간에서 필수적인 공간이며, 이 시대를 대응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미랄레스가 얘기하는 불확정적 공간은 단순히 기능이 없는 공간이 아니다. 기능이 없는 공간은 쉬이 황폐해지고 버려진다.


  우리 주변에서도 이와 같은 공간은 쉽게 관찰할 수 있다. 많은 고층 빌딩 주변에 있는 공공공간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불확정적이지만, 가능성이 발현되지 않는 공간, 우리가 지양(止揚)해야 할 공간이다. 건축 나아가 도시 단위에서의 불확정적 공간의 조성을 필요하며, 이에 대한 단서를 우리는 미랄레스의 건축 속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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