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몸에 수백 개의 물방울이 생겼다.

by 김민석

온몸에 수백 개의 물방울이 생겼다.


처음에는 팔꿈치 부분에서 빨간 점이 생기기 시작했다. 날씨가 건조해서 그런가 보다 하며 대수롭게 생각하지 않았다.



일주일 뒤 팔꿈치에서 시작된 물방울들은 어느새 손목 주변까지 덮었고, 이 주 뒤에는 허벅지와 종아리까지, 그리고 지금은 등부터 복부까지 번졌다. 온몸이 전부 빨간 물방울로 뒤덮혔다.



여전히 나는 신경 쓰이지 않았다. 긴팔과 긴바지로 몸을 덮으면 드러나지 않으니까. 그럴 수 있는 계절이니까.



밤에 온몸이 가려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지경이 되어서야 피부과로 향했다. 나는 의사 앞에서 팔을 걷고, 바지를 내린 뒤 몸에 생긴 수백 개의 물방울을 드러낸다. 의사는 피부가 이렇게 될 때까지 어떻게 병원을 오지 않았냐고 묻는다.



‘옷으로 덮으면 보이지 않으니까요.’라고 속으로 말을 삼켰다. 나는 그런 방식에 익숙한 사람이니까.



검사를 통해 피부에도 감기가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감기에 걸린 이후 면역력이 회복하지 못해 ‘물방울 건선’이라는 피부 질환이 생겼다고 의사는 말했다.



집으로 돌아와 유튜브에 물방울 건선을 검색해 봤다. ‘죽어야 끝나는 건선 치료’, ‘만성 건선 치료, 해낼 수 있습니다.’ 같은 부풀려진 제목들 앞에서 나는 내 피부 질환을 더 이상 들여다보고 싶지 않아 졌다.



‘죽어야 끝나는’ 뒤에 붙는 단어가, ‘해낼 수 있다’는 말 앞에 붙는 단어가 고작 건선 치료라니. 혼자서 두 단어 앞뒤에 수많은 단어들을 떠올리다가, 끝내 덮어두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덮어두는 사람이 되었다. 비겁해 보일 수 있지만, 그것밖에 방법이 없을 때가 있으니까. 과거를 떠올리는 생각이 왜곡을 연쇄적으로 낳는다는 걸 알고 난 뒤, 끝까지 들여다보기보다는 잠시 덮어두는 쪽을 선택했다.


죽어야 끝날 것 같던 일들도 지나갈 수 있다고 믿고 싶었으니까. 옷으로 피부를 가리는 일처럼, 나의 많은 순간들도 그렇게 덮어내며 지나칠 수 있었다.



덮는다는 건, 언제나 회피는 아니다. 모든 일들을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 신경 쓰이지 않았던 피부도 온몸이 가려워지면서 결국 병원에 간 것처럼,



지난 일들과 감정들도 현재의 상황에 필요해질 때 다시 꺼내면 된다. 기억나지 않아도 괜찮다. 잘 지나왔기에 붙잡지 않았을 터이니.



그러니까 우리 덮는 사람이 되자.


정리가 되지 않는 생각들은 맨 아래 손이 자주 가지 않는 서랍에 아무렇게나 넣어두자. 사라지거나 없어지지는 않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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