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눈깨비

by 김민석

“첫눈이라고 해야 되나?”




이천이십사년 십일월 이십 육일. 올해 처음으로 진눈깨비가 내렸다. 단단하게 얼은 우박도 아닌, 얼음의 결정체들이 빼곡히 모여 차갑지만 포근해 보이는 눈도 아닌. 진눈깨비는 단단하지도, 포근한 느낌도 없다.




우박과 눈이 손에 닿을 때, 그들의 존재는 서서히 사라진다. 달갑지 않은 따뜻한 손 온도에 투쟁하듯이. 반면에 진눈깨비가 손에 닿을 때. 따뜻한 온도에 빠르게 자신을 지운다. 따뜻한 손 온도에 투항하듯이. 그렇게 진눈깨비는 형체를 잃은 채 작은 물방울이 된다.




어쩌면 지워지는 것이 아닐지도 생각해 본다. 낯설지만 따뜻한 마음을 왜곡하지 않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 어디까지 나를 드러내야 할까, 하며 고민할 시간에 상대방의 마음을 믿고 감사하는 시간에 무게중심을 두는 확신. 이것은 투항이 아닌 수용이 아닐까?




나이가 들면서 우박과 눈처럼 누군가의 따뜻한 마음에 투쟁하듯이 상대방의 배려와 존중 뒤에 날카로운 무엇이 있을 거라며 녹지 않은 적도, 간을 보다가 이미 상대가 떠난 뒤 천천히 녹았던 적도 있었다. 사실, 날카로운 것들은 누군가의 마음을 믿지 못하고 자신을 숨기는 시간이었다. 속일 수 있을 것 같지만 거짓된 마음과 행동은 금세 들통나기 마련. 그렇게 또 사람을 잃게 되고, 관계는 끝이 난다.




온전히 따뜻한 마음을 받지 못하더라도 사람 사는 것이 원래 그런거 라며 무시당하지 않고 손가락질을 받지 않기 위한 단단한 처세라고 생각했다. 어리석게도.




나도 안다. 관심과 사랑이 없는 세상 속에 마음을 나누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그저 시간을 때우며 앞으로의 삶을 보내야 된다는 것을.




사랑을 받지 못하면 바다 한가운데 홀로 표류하는 느낌이겠지만 미움을 받고 산다는 것은 심해 깊숙이 들어가 어둠을 매일 같이 마주하는 일 같으니까.




‘미움받을 용기’라는 단어의 시선이 멈춰본 적이 있던 우리는 모두가 미움을 받는다는 건 얼마나 두려운 줄 알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해로 들어가겠다는 식상한 얘기는 하지 않겠다. 단지 누군가 따뜻한 손을 불쑥 내게 건네는 날, 대부분의 걱정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속는 셈 치고 믿어보기로.




진눈깨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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