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들갑

by 김민석

그런 적이 있었다. 나를 오랫동안 알고 지낸 사람들과 지난 일들의 얘기를 할 때 전혀 기억이 나질 않던 순간. “우리 이랬던 적 있는데 그치?”라고 물어보면 기억 나는 척을 하면서 그들의 말에 거짓으로 응수했다.


대화만 반토막 내는 건 괜찮았지만 그들이 간직한 추억까지 함께 잘라내는 것 같았다. 기억력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만, 과거의 선명한 것들은 장면뿐만 아니라 몸의 감각으로 여전히 남아 있었다.


발이 깨질 것 같이 추운 날 이면 겨울바다 모래사장의 촉감이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느껴지니까. 과거를 한데 모아 전부 태워버리는 사람은 아닐 거라며 작게나마 공허한 마음을 달랬다.


그러니까 겨울바다를 밖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어지럽게 추웠던 날. 정신 나간 사람처럼 신발을 벗고 모래사장을 뛰던 순간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된다.


그곳에 큰 사건은 없었다.


그날의 기억에는 호들갑 하나만 남아 있었다.


이천이십육년 일월 일일. 지금은 한 해가 바뀐 지 한 시간 하고도 십이분이 지났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새벽에 인스타그램을 켠 뒤 엄지손가락을 위에서 아래로 강하게 다섯 번 튕군다. 단지 하루가 시작됐을 뿐인데 사람들은 새벽부터 각자의 자리에서 분주하다.


누군가는 한 해가 지나갔다는 이유로 한파를 뚫고 술을 마시고 있고, 누군가는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형식적인 카톡을 지인들에게 남기고 있으며, 누군가는 새벽에 해돋이를 보러 가기 위해서 늦은 시간 김밥을 말고 있다.


모두가 어떤 날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아닌, 기억 하나를 붙잡기 위해 오늘도 귀여운 호들갑 하나를 만들어 나가고 있는 게 아닐까, 적어도 오늘 새벽의 나는 그렇게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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