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상상을 한 적 있다. 마음의 멍이 빠지지 않은 사람과 우연히 만나 술 한잔 하는 상상. 서로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말이다. 나이도 성별도 생김새도 상관없다.
장소는 인적이 드문 위스키 바. 주인장은 쳇베이커에 LP를 짚어서 턴테이블에 올려놓는다. 드득-드득-소리와 함께 노래는 공간을 채우기 시작한다.
술은 각자가 마시고 싶은 취향 대로, 잔을 부딪히지 않고 자신의 속도에 맞춰 마신다. 우리는 바테이블에 앉아 서로의 눈을 쳐다보지 않고 같은 방향을 바라본다. 상대방의 표정에 내 마음이 휘둘리지 않도록, 눈물이 흐르는 것을 그대로 둘 수 있도록 해야만 된다. 어떤 말을 뱉어야 할지 고민하며 눈을 양쪽으로 굴리던 습관도 이야기에 방해가 될 것이 분명하니까. 앞을 응시한 채로 자신의 호흡에 맞게 이야기를 꺼내는 그런 상상을 한다.
조금 더 나아가 보자. 상대방은 마음의 멍이 든 사건에 있어서 덜어내지 않고 세밀하게 내게 얘기해 줬으면 좋겠다. 부탁이 있다면, 나보다 그가 먼저 말하는 것이다. 내가 먼저 말하면 덜어내려던 관성 때문에 이야기를 토막 내어 말할 수 있으니까. 전부를 꺼내기 위한 그의 노력에 나는 다시금 용기를 얻기 위해서 일 것이다.
한 명이 얘기를 하고 있을 때, 다른 한 명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린다. 이상한 추임새는 되려 이야기에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있으니까. 이를테면 힘들었겠다, 속상했겠다 와 같은 맥 빠지는 말들. 다만, 상대방이 이야기 도중에 눈물을 머금는 것이 느껴진다면 “힘들었겠다” 보다는 힘들었지?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비슷한 말 같아 보여도 다정함의 온도가 다르니까.
어느덧 집에 돌아갈 시간이다. 서로의 연락처를 묻기보다는 자주 걷는 길을 물어보는 게 좋겠다. 토해낼 무언가가 있을 때, 그 길을 걷기로 한다. 마주치지 못해도 괜찮다. 그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채워지는 무언가가 분명 있을 것이다. 다시금 우연히 만날 수 있다는 작은 낭만 하나를 서로에게 새긴 뒤, 그렇게 둘은 헤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