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이십육년 사월육일, 오전 일곱시.
며칠째 눈을 감으면 당신이 먼저 도착해 있다.
이왕 꿈이라면,
예뻤던 장면들이 떠올랐으면 좋겠는데
매번 다치는 꿈이다.
이런 꿈을 이어 붙이며 살고 싶지는 않다.
스위스 안락사 같은 것들을 검색해본다.
해는 아침을 떠났다.
사람이 떠나는 건 이상하지 않다.
창밖에는 비가 내린다.
내 탓이 아니라, 날씨 탓이라고 생각해본다.
집 안에 있어도 비를 피할 수는 없다.
온 몸이 무겁고 공기는 자꾸 모자란다.
숨을 크게 쉬는 습관이 생겼다.
약은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출근을 한다.
“피곤해 보이세요.”
“선생님들이 잘 해주셔서, 바빠서 그래요.”
해야 할 말과, 하고 싶은 말을
구분할 줄 알게 되었다.
사람들이 나를 ‘쎄하다’고 말하던 순간,
하고 싶은 말은 참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전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영화 한 편을 틀었다.
밤에 영화를 보면
당신은 분명 꿈에 나타난다.
영화 제목은 ‘만약에 우리’.
모든 장면이
당신과 나였다.
당신이 쳐다보던 눈빛이 그리워도,
아무렇게나 몸을 내던지던 당신이 보고 싶어도,
당신이 전부였던 그때로 돌아갈 수는 없다.
‘만약에’란 그런 것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재회란 꼭 다시 만남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사실 앞에서 초라해졌다.
당신은 선택을 했고,
그 선택은 옳았다.
당신의 삶이 무너지는 것보다
이게 덜 아팠을 것이다.
늦지 않게 제주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라봉 브로콜리 펜션 앞 벤치.
그곳이, 당신을 놓아주기에는 적당한 장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