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이 있을 거야.”
벽 앞에서 조용히 혼잣말로 내뱉고 있다. 벽 너머에 나는 분명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다. “손잡이가 있는 문은 아닐 거야.” 벽 앞에서 조용히 혼잣말로 내뱉고 있다.
벽을 손으로 가볍게 밀었다. 두드렸다. 발로 찼다. 열 걸음 뒤로 간 뒤, 벽으로 뛰어가며 오른쪽 어깨로 부딪혔다. 시퍼런 멍이 어깨에 들어서 마음의 멍은 덮혀질 때까지.
여러 번 뛰고 부딪혔다. 씨발. 벽은 벽이었다. 극복할 수 없는 것들은 역시나 극복할 수 없는 것이었다.
새로운 것들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은, 삶의 방향성을 잃는 일.
포기했다. 벽을 등진 채 앉았다. 벽의 반대 방향이 보인다. 내가 벽까지 걸어왔던 그 길.
하염없이 걷기도, 뛰기도, 주저앉기도 했던 그 길이 보였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갈 때마다 새롭게 다가왔던 순간들은 낡아져 있었다.
그것들이 더러 모여 나를 만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진 벽을 손으로 짚고 일어났다. 천천히 걸어왔던 방향으로 걸어간다. 걸어가는 방향은 서쪽일 것이다.
눈앞에는 낙조가 펼쳐지고 있으니까.
해를 따라서 계속 걸어갔다. 목 뒷덜미에서 바다 냄새가 진하게 풍겨온다. 겨울바다 냄새였다. 발이 깨질 것 같은 추운 감각도 함께 따라왔다. 낡은 것들을 충분히 눈에 담고 느꼈다.
해가 뜨는 것보다 지는 걸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뜨는 해는 화려하지만 바라보는 사람을 따뜻하게 배려하지는 않는다. 반면 지는 해는 지는 순간까지도 바라보는 사람을 따뜻하게 데워준다는 이유에서 지는 해가 좋았다.
겨울바다의 냄새와 질감을 좋아했던 사람이었다. 발이 깨질 것 같던 추위까지도. 더위를 피하기 위해서 바다로 들어가는 것은 바다의 역할은 아니다. 붕 떠있는 마음을 엄숙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바다의 역할이다.
그것은 겨울바다 만이 할 수 있는 일.
낡은 과거를 손으로 툭툭 털어내며 ‘나’를 찾아나가는 것이 삶의 방향성 일 것이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벽과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