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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Dec 10. 2022

내 인생의 위로

내맘대로 작가되기!

세진모터스쿨을 끝내고 한동안 어떤 글을 써야 할지 막막했다. 육아로 고군분투하면서 끄적거렸던 글을 다시 써볼까 해도, 아이들이 이미 어느 정도 자라고 나니, 그때의 그 감정이 잘 살아나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글쓰기에 욕심을 내고 있는 나를 보았다.

처음 시작은 나를 위한 글쓰기였다. 내가 위로받기 위해 쓴 글이 누군가도 위로해 줄 수 있으면 그것으로 나의 글쓰기는 일을 다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과정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운 좋게 브런치에 나의 이야기를 쓸 수 있게 되기 시작하니,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전보다도 더.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고, 유행하는 최근 소설들을 읽으며 새로 유행하는 문체에 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도 따라 그런 멋진 글을 쓰고 싶어졌다.


그러다 보니, 내 글을 쓸 수 없게 되었다.

어떤 문장을 써도 단조롭고, 시시하고, 초라해 보였다. 책 한 권 내 보지도 않아놓고는 벌써 슬럼프가 오다니!


어떤 글을 쓸까, 어떤 글을 시작할까 하루하루 고민이었다.

덤덤하게 내 삶을 풀어가는 에세이를 쓸까.

어렸을 때부터 줄곧 머릿속에 상상해오던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볼까.

예전에 공부했던 미학을 내 관심사로 풀어보는 비문학을 시도해볼까.

아니면 그냥 번역이라도 해볼까.

무엇인가 그럴듯하게 써 보고 싶었다.


이렇게 브런치에 글 하나 못 올리는 몇 주간이 흐르고……


어제 집으로 책 열 권이 도착했다. 잊고 있었던 ‘내’ 책이었다!


수개월 전 우연히 알게 된 한국디지털문인협회 공동 문집에 참여를 제안받고, 공동 문집의 주제였던 ‘내 인생의 위로’는 뭔가 고민했었다.

솔직히 말하면 내 인생이 그렇게 드라마틱하지는 않다. 그렇다고 평온하지도 않다. 미적지근한 삶의 가운데 그래도 받았던 위로들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물론 가장 큰 위로는 늘 내가 믿고 있는 그 전능자이셨다. 하지만, 나는 그분과 나만의 폭풍 같던 시간들을 흔히 말하는 ‘교회용어’를 써 가면서 풀고 싶지 않았다. ‘교회용어’가 들어감으로써 그분과의 시간들이 보편화되고, 희화화되는 것이 싫었다. 그래서 나는 위로받았던 그때의 모든 이미지들을 문자화 했다. 그날의 그 뙤약볕, 도심 속의 풍경, 집 앞 풍경, 꽃집에서 산 꽃 그날 그분과 함께 걸어가며 눈으로 촬영했던 그날의 그 풍경을 머릿속에서 꺼내어 편집했다. 그 글을 쓰면서 다시 나는 위로를 받았다. 그 길을 다시 걷고 싶어졌다. 그렇게 원고를 보냈다.

  

 원고를 낼 때도, 마지막 원고 수정 까지도, 이게 책이 되긴 되는 건가 의문이었다. 책이 나오더라도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쓴 책이니, 그 안에 단 몇 장의 내 글이 들어간들 고상한 취미생활의 일부일 뿐 아닌가 생각했다.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의 이력과 스펙은 대단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하지만, 마지막까지도 나는 나의 프로필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했다. 이제는 딱히 소속도 없으니 말이다.


‘일러스트레이터, 미술쌤, 브런치작가’


최종적으로 보낸 나의 프로필이다.

‘그래도 내가 브런치 작가기는 하네…….’


그렇게 잊고 있었던 내 책이 인쇄를 마치고 집으로 배송되었다. 택배박스를 보는 순간에도 ‘아, 책이 왔구나’ 정도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막상 박스를 뜯고, ISBN이 찍힌 책 표지, 책 안쪽에 찍혀있는 내 이름 석자를 보니, ‘진짜 책이네!’라는 느낌표가 머리 위로 떠올랐다. 책 속의 내 글을 다시 읽어 보았다. 역시나 기교 따위 없는 담백한 글이었다. 하지만, 그날의 그 풍경이 그 글을 읽으며 다시 머릿속에 스쳐 지나갔다. 다른 분들의 글도 읽어보았다. 각자의 받은 다양한 형태의 위로들이 하나 둘 꾀어 책 한 권으로 묶여있었다.


다시 글을 쓰자! 내 맘대로 작가 하자! 마음속에서 다시 의욕이 솟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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