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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Jul 17. 2023

엄마의 추억을 따라서

여기 무슨 호그와트야?


7월 13일(목)


벌써 영국에 입국한 지 두 주째 접어든다. 각박한 일주일의 런던 여행으로 긴장의 연속이었던 하루하루가 지나고, 드디어 이곳 첼튼햄(Cheltenham)에 도착했다. 역시 대도시는 전세계 어디를 가나 삭막하다. 남편에게 무리해서 장기휴가를 쓰라고 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아니었으면 이 무거운 짐들을 이끌고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어떻게 첼튼햄까지 올 수 있었을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짐뿐이 아니라 남편이라는 존재 하나만으로 얼마나 든든하고 의지가 되는 것인지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온 후에 뼈저리게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왜 나는 아이들과 영국에 오려고 했던 것인가? ISFP인 나는 무언가 꽂히면 꼭 하고 말아야 직성이 풀린다. 올해 초 코로나가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꼭 다른 세상을 경험하게 해 주고 싶었다. 나의 13살에 우리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 엄마는 항상 가게일로 바빴기 때문에, 나를 직접 데리고 해외로 나갈 수 없었다. 그만큼 형편이여유롭지도 않았다. 그런 나에게 영국에 계신 이모 덕분에 기적적으로 해외생활을 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엄마는 13살의 나와 11살의 나의 동생을 무작정 비행기를 태워 여름방학 한달을 영국으로 보내기로 결심했다. 그 당시 대학을 갓 입학한 사촌오빠가 유럽배낭여행을 하려고 영국으로떠나는 길이었는데, 그 오빠랑 같이 비행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으로 가도록 한 것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대학 1학년도 아직 아기인 것 같은데, 우리 엄마는 무얼 믿고 그 아이들을 지구 반대편으로 보내려고 했는지 그 믿음이 참 대단하다. 아무튼 그곳에서 이모 덕분에 잊을 수 없는 경험을 한 나는 한국에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결국 그곳에서 학교도 입학해서 다니게 되었다.


무엇이 그 어린 나를 이끌었을까? 남들은 다 미국, 캐나다가 좋다고 했는데, 나는 그냥 영국이 훨씬 멋있다고 생각했다. 영국 고전들을 읽으면서 상상만 했던 고풍스러운 건물들, 구름과 바람, 넓지만 아담한 들판, 그것들에 둘러싸여지면 마치 내가 소설 속 주인공이 된 것만 같은 느낌이어서 그랬을까?  그렇게 떼를 써서 영국의 보딩스쿨에 입학을 하고 몇 년을 지냈는데, IMF 외환 위기가 닥쳤다. 겨울방학에 잠깐만 한국에 다녀올 것이라 한 것이, 그때가 마지막이었다. 20대, 30대, 여행으로라도 한 번쯤 가 볼 수 있었을 텐데, 시간적인 여유도, 물질적인 여유도 없었다. 지구 반대편을 간 다는 것은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서 영국에 돌아온다는 것을 인생의 숙제라고 생각했나 보다. 끝을 맺지 못한 여정을 끝을 맺어 보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그래서 예약버튼을 눌렀다. 맘까페에도 포스트 코로나 여름방학 계획들로 다들 들떠 있었다. 가까운 동남아 해외여행부터, 먼 북유럽 여행, 영미권 서머캠프 등 많은 정보들로 가득 차기시작했다. 물론 나의 목표도 그들이 생각하는 목표와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다른 문화권의 사람들과 만나는 경험, 조금 더 몰입된 영어사용, 새로이 확대되는 견문. 그렇지만 나에게는 한 가지가 더 있었다. 아니 애초에 그 목적이 더 컸다. 17세 때 쫓기듯 나온 그곳을 다시 가면 내가 메지 못했던 매듭 하나를 짓고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영국으로 선택했다. 다른 가성비 좋고, 더 좋은 캠프들이 있겠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그냥 내가 다녔던 그 학교에서 써머캠프가 이루어진다는 것 하나만으로 나는 그곳을 골랐다.


첼튼햄(Cheltenham) 도착 첫날은 비가 많이 왔다. 울퉁불퉁한 길을 따라 기차역에서 집까지 네 개의 케리어를 들고 걸었다. 덜커덩 덜컹 캐리어 소리, 동양인 4인가족, 고요한 작은 동네에서 당연 주목이 될 수밖에 없었다.

도착한 집은 5개월 전부터 예약해 놓은 에어비앤비이다. 예전에 하와이에서 여행할 때 에어비앤비 집을 한번 잘 못 고른 적이 있어서 이번에도 집을 보기 전까지 긴장을 놓지 않았다. 다행히 사진보다도 집이 더 넓었고, 프랑스인인 주인이 구석구석 집을 예쁘게 꾸며놓으셔서 한 달 내내 집에서만 지내도 좋을 것 같았다. 까다로운 남편도 집 잘 골랐다며 한시름 놓는다고 했다.


비가 조금 그치자 나는 내가 다녔던 학교이자, 아이들 여름캠프가 진행될 학교를 둘러보자고 했다.

아이들에게, 남편에게 꼭 보여주고 싶었다. 내일이면 떠날 남편에게는 오늘 밖에 시간이 없었다.

구글에 의지하여 학교까지 걸어가 보았다. 내가 다니던 학교는 Dean Close Senior School( 중고등학교)이고, 아이들 캠프가 진행될 곳은 건너편의 Dean Close Preparatory School(초등학교)이다. 내가 다니던 학교 앞에 다다르자 나는 눈을 반짝이며 이야기했다.


“저기, 저기가 내가 다니던 학교야!, 저 안쪽에 있는 게 채플이고, 여기 학교 앞 잔디밭에서 봄 되면 햇볕도 쐬고, 다람쥐들도 다니고 그래! 와, 아직도 그대로다!!!!!!”

남편은 눈을 크게 뜨며 놀란다.

“아니, 무슨 학교가 이래? 이거 완전 호그와트네!!”

“아닌 게 아니라, 해리포터에 나오는 호그와트의 시스템은 전형적인 영국 기숙사 학교의 시스템이야, 우리 학교도 기숙사 별로 팀으로 움직이고, 점수 메기고 그랬거든. 학교 건물도 보통 2~300년 넘은 건물들이라. 채플 안에도 들어가 보면 좋은데 아쉽네……”


그렇게 우리 가족은 학교를 한 바퀴 돌았다. 누구보다 흥분한 사람은 바로 나였다. 딸이 찍어 준 사진을 보니, 내 표정이 어린아이처럼 흥분하고 있었다. 아이들에게 나의 추억을 나누어 주고 싶어서 시작한 여정이었지만, 그보다도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 될 것이라는 기대에 마음이 한 껏 들떠 있다. 아이들은 어떨까? 아이들도 새로운 만남과 경험을 기대하고 있을까? 아니면 한국인은 커녕, 동양인도 쉽게 보이지 않는 이 곳에 대해 긴장하고 있을까? 부디 아이들이 이 한달을 무사히 지내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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