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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Jul 21. 2023

홀로서기 시작!

잘 가 남편~


7월 14일(금)


어제부터 비가 제법 많이 쏟아진다. 영국에서 비가 자주 오기는 하지만, 보통은 찔끔찔끔 내리는데, 어제오늘은 한국의 장맛비처럼 하루종일 내리고 있다. 오늘은 남편이 귀국하는 날이다. 애초에 일주일을 휴가를 낸 다는 것이 무리한 일이었는데, 다행히 휴가를 내어 와 주어 그래도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영국의 추억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날씨가 조금 좋았다면 근처에 작은 언덕이라도 같이 산책해 보는 건데, 비가 너무 많이 온다. 하는 수 없이 집에서 쉬다가 버스시간 맞춰서 나가기로 했다.

첼튼햄에는 우버도, 볼트도, 카카오택시도 없다. 첼튼햄 현지 택시회사를 검색해서 택시를 불렀다. 다행히 런던보다 요금이 훨씬 저렴하다.


런던으로 가는 버스 정류장에서 히드로 공항행 버스를 기다렸다. 동양인 가족이 버스를 기다리고 있으니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이 시골에 저 가족은 무슨 연유로 있는지 궁금해할 법도 하다. 히드로 공항으로 가는 버스가 들어왔다. 예약티켓을 체크하고 짐을 실었다. 잠깐 한 달 떨어져 지내는 것인데 괜히 마음에 불안함이 밀려온다. 분명 이 불안감은 막상 그가 떠나고 나면 사라질 불안감이다.  


아이들은 아빠랑 헤어지는 게 너무나 아쉬운가 보다. 한국에서도 항상 늦게 퇴근해서 아빠 볼 시간이 별로 없는데, 지구 반대편이라는 시공간이 주는 물리적 거리감은 무시할 것이 못되나 보다.

아빠가 탄 버스를 향해 아이들이 달려간다. 아빠에게 장난치듯 아이들은 즐겁게 버스를 따라가지만, 아마도 아이들 마음 한편에도 아빠라는 존재가 이제 곧 사라질 것이라는 허전함과 불안감이 있는 것 같다.


버스를 떠나보내고 근처에 타운센터를 아이들과 구경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일주일의 여행이 피곤했는지 더 이상 어딘가에 가보고 싶은 욕구가 없어 보였다. 비도 점점 더 거세게 내렸다.

타운센터 쪽으로 걷다 보니 책방이 하나 보였다. 책 욕심이 많은 나는 아이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책방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읽을만한 책을 골라 주었으면 좋겠는데, 한글책방에 가도 책은커녕 문구센터에서 캐릭터용품들만 보는 아이들이 하물며 영어로 된 책만 가득한 영국 책방에서 무슨 책을 고르랴……

나만 신나서 그림책 코너 하나하나 살폈지만, 아이들이 도통 지루해하는 통에 제대로 책을 볼 수가 없었다.

‘그래… 어차피 내일모레면 이 아이들도 캠프에 가니, 그때 나 혼자 다시 와야겠다.’


아이들과 함께 리젠트 아케이드로 향했다. 아이들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리젠트아케이드 물고기 시계!!!

내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너무나 신기해하고 좋아했던 그 시계!

아직도 그 물고기 시계가 있었다.

“얘들아! 저 시계가 정시가 되면 어떻게. 되는지 한번 봐봐~!”

두근두근 거리는 마음을 가다듬고 정시를 기다렸다.

“엄마, 이거 이미 정시 지났는데 아무 일도 안 일어나는데? 우리 시계보다 2분 빠르잖아. 이미 바늘이 정시를 지났어.”

“어? 어머 그러네!”

이상하다, 분명히 정시가 되면 경쾌한 음악소리와 함께 물고기가 돌아가면서 비눗방울이 뽀롱뽀롱 나와야 하는데……

그때 물고기 시계 옆에 안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죄송합니다. 당분간 고장 수리로 시계 운영을 중지합니다. 수개월 내로 고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구나… 고장이었구나…… 아쉬웠다. 아이들에게도 그 신기했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데……

그러고 보니 이곳 리전트 아케이드의 느낌은 내가 알던 그 느낌과 많이 다르긴 했다. 분명 하나하나는 변한 게 없는데, 예전같이 세련되고 활발한 느낌이 느껴지지 않는 달까? 허긴, 한국도 어딜 가나. 10년이고, 20년이고 지나면 다 변하기 마련인데. 26년 만에 찾은 이곳은 오히려 변화가 덜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빗속에서 집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을 찾아 헤매었다. 이제는 이 두 아이를 나 홀로 이끌어야 하는구나…… 구글이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오니 역시나 남편의 부재로 불안함은 잠깐이었다. 이내 혼자 아이들과의 시간이 자연스럽다. 어쩌면 조금 더 편해진 것 같기도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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