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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Aug 21. 2023

자유부인 코츠월드 탐방

나를 위한 힐링여행이 뭐 어때서!

8월 10일 (목)


‘됐어! 됐어! 나 혼자 다닐 거야! 내가 가고 싶은 데로 갈 거야!’

어제 아이들과 코츠월드 투어를 계획하며 한 껏 들떠 있었던 나의 마음은 아이들과의 대화 후 실망감으로 바뀌었다.


“얘들아, 엄마가 버튼 온 더 워터라는 곳도 가 봤는데, 거기 물에 발을 담그고 노는 아이들도 있고 재미있어 보이더라, 금요일에 날씨도 좋다는데, 학교 쉬고 엄마랑 여행 다닐까? 토요일은 날씨가 많이 안 좋을 것 같아서 그때는 여기저기 다니지는 못할 것 같아. “

흥분한 나의 목소리에 아이들은 사뭇 시큰둥하다.

“응? 거기가 어디인데?”

마치 부장님께 결재를 받아야 하는 것 같은 이 분위기에 나도 김이 조금 세기 시작했다.

“여기 코츠월드에 유명한 장소야, 거기가 싫으면, 엄마가 여기 근처에 동물농장도 찾아봤는데, 여기 갈까?”

“ 에잉? 뭐야, 여기는 안성팜랜드잖아! “

한국에서 너무 애들을 데리고 많이 놀러 다녔는지, 아이들은 웬만한 곳은 관심이 없는 것 같다.

“엄마, 그냥 놀이공원 가고 싶어.”

“뭐?? 놀이공원?? 한국에도 놀이공원은 있잖아!”

“그렇게 말하면 한국에도 동물농장도 있고, 언덕도 있어!”

“아니, 한국의 언덕이랑 비교하면 안 되지!, 그리고 여기는 옛날 영국 마을들 그대로 풍경이라, 한국이랑은 전혀 다른 분위기인데……“

세상에! 여기까지 와서 영국 풍경을 보고 가자는 게 그렇게 재미없나? 재미로 따지면 물론 그렇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에게 놀이공원은 안된다는 이유를 여러 가지로 설명했지만, 납득하지 못하는 분위기이다. 아이들의 실망스러운 얼굴을 보고 있자니 엄마마음이 또 같이 가주고 싶기도 하다. 그나마 영국에서 크고 유명한 ‘Alton towers’ 놀이공원을 검색해 보았는데, 첼튼햄에서 운전으로 두 시간이다.

꿀꺽! 못할 것은 없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 기껏 가고 싶은 곳이 놀이공원이라니……

“알았어, 알았어~ 그럼 금요일에는 동물농장, 토요일에는 놀이공원 어때?”

“금요일? 그럼 금요일에는 학교 안 가? 캠프 마지막 날인데……”

으잉? 의외로 또 캠프가 재미있어서 마지막까지 가고 싶은가 보다.

“캠프도 가고 싶어? 그럼 농장이나, 놀이공원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데……”

아이들은 당연히 놀이공원이 더 좋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못내 아쉽다. 이 근처의 자연과 아름다움을 느끼고 가는 것이 한국에도 있는 놀이공원에 가는 것보다는 가치 있을 것 같지만, 아이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갈팡질팡 고민을 하다 문득 내가 왜 이 애들을 맞추려고 애쓰는 것인가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내가 리더인데, 내가 엄마인데, 아이들이 원하는 것만 들어주려고 갈팡질팡 할 필요 없이, 내가 결정하고 판단해서 아이들 보고 따라오라고 하면 되는 것 아닌가!

게다가, 아이들이 캠프가 재미있고, 즐겁다는데, 굳이 이 근처 여행지에 같이 둘러보겠다고 하루를 빼겠다고 고민하던 것도 할 필요 없는 고민인 것 같았다. 아이들은 그냥 캠프에 마지막 날까지 가고, 토요일에는 내가 놀이공원이든, 동물농장이든 합리적으로 더 나은 곳을 선택해서 결정하면 되는 것이었다! 엄마란 그런 것 아닌가…… 왜 이렇게 아이들에게 휘둘리고 있었는지 정신이 들었다.


“아니 그냥 됐다 얘들아. 너희는 마지막날까지 캠프 가고, 토요일에 어디 갈지는 엄마가 그냥 정할게! 놀이공원은 여기서 멀어서 엄마가 운전하기도 힘들고, 너희 둘 놀이기구 타는 레벨이 달라서 이도 저도 안되고 고생만 할 거야. 엄마가 알아서 갈 만한 곳 찾을 테니 너희는 그냥 따라만 와!”

나의 이 단호한 결정에 아이들은 의외로 반발하지 않았다! 어쩌면, 내가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것을 아이들이게 미뤄놓고, 아이들이 원하는 것이라는 핑계를 대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튼, 남은 평일, 아이들이 캠프에 가는 동안 나는 자유부인 아닌가! 그렇게 원했던 혼자만의 시간을, 혼자서 즐기면 되지 뭐가 고민인가! 나는 남은 코츠월드 여행을 내 마음대로 동선을 짜 보기로 했다. 차가 있으니 어디든 갈 수 있다! 한국에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이곳 첼튼햄에서 가깝게 가볼 수 있는 아름다운 곳들을 찾아보았다.


그렇게 오늘은 ‘National trust’ 사이트에서 찾은 영국식 정원 ‘Hidcote’에 가 보기로 했다.

로렌스 존슨이라는 사람이 전 세계의 꽃을 모아 20세기 초 30여 년에 걸쳐 꾸민 정원이다. 꽃의 종류에 따라 흙과, 화분 등을 다르게 관리하여 정원 디자인에 대한 많은 영감을 불어넣어 준 곳이라 한다.

아담하고 미로 같은 정원을 마음껏 누리고 있는데, 아이들이 없다! 같이 다니면서 힘들다고 찡찡거렸을 아이들을 생각하면, 내가 보고 싶은 것을 혼자 볼 수 있다는 기회가 있다는 것에 진작 감사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이들에게 많은 것을 보여주고 싶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고 싶었지만, 때로는 너무 많은 양의 정보로 아이들이 감각의 소화불량에 걸리는 것은 아니었을지 돌이켜보게 된다. 어찌되었든 이 홀가분함이 그저 좋기만 하다.


돌아가는 길은 Winchcombe이라는 작은 마을에 들러 보았다.  

옛것 그대로의 마을을 한가롭게 거닐고 있으면 유럽의 중세시대로 넘어온 것 같다. 아, 그러고 보니 여기도 유럽이지!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옆에 샛길로 ’Public Footpath’가 보인다. 이제 더 마음이 담대해졌다. 철문을 열어, 발을 내딛는다.

넓은 초원이 펼쳐지고, 양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울타리도 없이 바로 내 앞에서 양이 풀을 뜯고 있다! 양들도 내가 자주 보던 얼굴이 아닌지 조금 놀라기는 하지만 이내 헤치지 않을 것을 알고 풀을 먹는다. 이 평원을 나 홀로 독차지하고 있다니…… 시편 23편이 절로 떠오른다.


(시편 23편 / 개역개정)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그래! 나를 위한 힐링여행이 뭐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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