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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키리카 Aug 18. 2023

운전연수까지 예비하시는 분!

예쁜 영국식 집에서 커피 한잔은 덤


8월 9일(수)


아침이 되니 승모근 쪽이 뻐근하다. 어제 너무 긴장하면서 운전을 해서 그런가 보다. 차로 등교를 한다고 아이들은 잔뜩 늦장을 부리고 있다. 학교까지는 차로 5분도 안 되는 거리이지만 무사히 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 기껏 차를 빌렸으니 인근 코츠월드라도 가 봐야 할 텐데,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냥 다음 주 월요일까지 차 세워놓을까? 다음 주 월요일 공항에는 어떻게 가지? 너무 막막하다.


비록 5분도 안 되는 거리이지만, 조심스럽게 드라이브 모드로 눌러 주행을 시작했다.

“엄마~ 이거 음악 블루투스 연결 안 돼? 음악 듣자~”

해맑게 음악을 요구하는 둘째의 요구에 버럭 한다.

“야! 엄마 지금 음악 들으면서 운전할 상황이 아니거든! “

“알았어~ 아니면 말지 왜 화를 내~”

손이 벌벌 떨리고, 다시 승모근에 힘이 들어간다.

조심스럽게 차선을 변경하고 학교까지 들어갔다. 다행이다. 무사히 도착했다.


“어머! 다혜어머니!”

멀리서 한국어로 나를 부른다. 누구인가 했더니, 다혜의 친구의 이모할머님이었다. 다혜 친구가 어떻게 이 영국 시골까지 오게 되었는지 궁금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모할머님이 이곳에서 20년 넘게 거주하고 계신 중이라고 했다. 그분 역시 내가 어떻게 이 시골까지 왔는지 궁금하신 것 같다. 지난주에 짧게 이야기를 나누었었는데, 오늘 나에게 반갑게 인사를 해 주셨다.

”아이 보내고 혹시 뭐 하세요? “

“네? 아, 보통 집에만 있었는데, 차를 빌려봤어요. 남은 시간 근처에 조금 둘러보려고요.”

“아, 그러시군요. 근처에 예쁜 곳이 많죠. 혹시 오늘 어디 가시기로 한 곳 있어요? “

“버튼 온 더 워터를 한 번 가볼까 싶었는데요…”

“어머, 제가 집이 그쪽 방향인데, 그럼 제가 앞에서 버튼 온 더 워터까지 인도해 드릴 테니, 저를 따라오시겠어요?”

“네? 정말 그래도 괜찮을까요? “

“그럼요, 제 집이 그쪽 방향이거든요.”

과연 내가 잘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은 되었지만, 그래도 무작정 네비만 믿고 가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다.

“그럼 부탁드립니다. “


그렇게 그분의 인도를 받고 차를 몰기 시작했다. 어제 백미러를 박을 번 한 것 때문에, 왼쪽 차폭이 굉장히 신경이 쓰였다. 게다가 네비에서 Round about을 외칠 때마다 뒷목이 뻣뻣해졌다. 그런 와중에 그분의 뒤를 따라가니 자연스럽게 차폭감도 익히게 되었고, Round about의 들어가고 나가는 타이밍도 적절히 익히게 되었다. 영국은 한국 같은 고속도로 톨게이트가 거의 없고, 가다가 길이 빨라지면 고속도로고, 느려지면 다시 일반 국도 같이 바뀌는데, 도로마다의 속도감도 앞에서 조절해 주시니 익히기가 훨씬 수월했다. 정신없이 따라가다 보니, 자연스럽게 운전연수를 받은 샘이 되었다.


중간에 잠깐 차를 왼쪽에 붙이신다. 차가 별로 없는 도로이다.

“다혜엄마 잘 따라오네요. 혹시 시간 되면 같이 커피 한잔 하실래요?”

“따라오다 보니 운전연수를 받은 거 같아요. 너무 감사합니다. 커피는 제가 사도록 하겠습니다. “

“아니에요~ 여기는 제 동네니까 제가 한잔 살게요. 저 따라오세요. “



따라간 곳은 너무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커피숍 겸 레스토랑이었다. 혼자였으면 이런 곳에 선뜻 들어오지도 못했을 텐데, 역시 현지인의 정보력은 구글을 뛰어넘는다. 이곳에서 커피를 한잔씩 시키고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분은 항렬로 따지면 다혜친구의 이모할머님이지만, 할머니라는 단어가 전혀 어울리지 않게 외모와, 대화, 태도가 세련된 분이셨다. 영국에서 오래 사셔서 그런지 대화의 주제가 다양한 분야로 열려있었고, 신기하게도 세대를 뛰어넘는 이 대화가 너무나 즐거웠다. 한국에서 어르신들의 대화에 끼면 보통 그분들의 자랑을 몇 시간 동안 들어야 하는데, 이분과의 대화는 그런 대화와는 사뭇 달랐다. 물론, 나도 그 한 달간 어른과의 대화가 고팠던 것 같기도 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대화는 나의 생리현상으로 인해 중단되었고, 나는 나의 목적지를 향해 다시 출발하기로 했다.

“다혜엄마, 버튼 온 더 워터는 저쪽 방향으로 가면 되고, 오는 길은 스토우 온 더 월드, 브로드웨이, 윈치콤 이렇게 돌아서 오면 코츠월드 투어는 중요한 건 다 보는 거예요.”

“너무 감사해서 어쩌죠? 오늘 운전연수도 받고, 커피까지 얻어마셨네요. “

“나야 오는 길인데요 뭐, 오늘 즐거웠어요. 조심히 가세요. “


운전대를 다시 잡으니, 훨씬 자신감이 생겼다. 차폭감도, 속도도, Round about도 훨씬 자연스럽게 갈 수 있다!

버튼 온 더 워터까지 가는 길이 너무 아름다웠다. 내가 그렇게 그리워했던 영국의 언덕이다! 운전이 조금 익숙해지니 푸른 하늘, 낮게 떠다니는 구름, 언덕 위의 양 떼들, 푸른 잔디밭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름다웠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차를 못 빌렸으면 즐기지 못했을 텐데……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도록, 날씨와, 운전연수까지 준비하시다니! 내가 용기를 내어 한 발을 내딛으면, 이렇게 세심하게 하나씩 인도하시는구나!


버튼 온 더 워터는 코츠월드의 명소이다 보니 관광객들이 정말 많다. 여름휴가철이라 내국인 여행객들도 많이 보였고, 세계 각지의 여행객들도 조용히 흐르는 물가의 영국 시골 마을 풍경을 즐기고 있었다. 물에 발을 담그고 놀고 있는 아이들을 보니 우리 아이들 생각도 났다. 오는 길에 보았던 아름다운 언덕도 보여주고 싶고, 물가에서 시원하게 발도 담가보게 하고 싶어 진다. 금요일 하루 캠프를 빠져 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어디를 가든 아이들 생각이 나고, 남편 생각이 난다. 혼자서 보고 즐기는 것도 좋지만, 같이 나누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이런 마음이 드는 걸 보니 영락없이 아줌마이다.

돌아다니는 내내 아이들과 어떤 것을 보면 좋을지, 어떤 것을 먹으면 좋을지, 무엇을 하면 좋을지 고민을 한다.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그렇게 즐거워할 것 같지 않을 것 같다는 불안감도 든다. 이미 첫 주 런던 여행으로 여행지를 보는 것에 대해 큰 기대를 갖고 있지 않기도 하고 말이다. 이 사춘기 초입 아이들을 데리고 뭘 해야 하나……

숙제를 잔뜩 안고 다시 아이들을 데리러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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