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망친 노예 하갈에게 찾아온 반전

창세기 16:8-13

by 우또

[창세기 16장 8-13절, 새번역]

8 천사가 물었다. "사래의 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하갈이 대답하였다. "나의 여주인 사래에게서 도망하여 나오는 길입니다."

9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면서 살아라."

10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또 일렀다. "내가 너에게 많은 자손을 주겠다. 자손이 셀 수도 없을 만큼 불어나게 하겠다."

11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또 일렀다. "너는 임신한 몸이다. 아들을 낳게 될 터이니, 그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하여라. 네가 고통 가운데서 부르짖는 소리를 주님께서 들으셨기 때문이다.

12 너의 아들은 들나귀처럼 될 것이다. 그는 모든 사람과 싸울 것이고, 모든 사람 또한 그와 싸울 것이다. 그는 자기의 모든 친족과 대결하며 살아가게 될 것이다."

13 하갈은 "내가 여기에서 나를 보시는 하나님을 뵙고도, 이렇게 살아서, 겪은 일을 말할 수 있다니!" 하면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주님을 "보시는 하나님"이라고 이름지어서 불렀다.


사막의 샘 곁에서 하갈을 만난 천사는 다짜고짜 이렇게 말합니다.

"주인에게 돌아가서 복종해라."

"네 아들은 들나귀처럼 되어 모든 사람과 싸우게 될 것이다."


처음 이 구절을 읽었을 때는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학대받는 피해자에게 다시 돌아가라니 너무 가혹한 처사 같았고,

태어날 아이에게 '들나귀' 같다고 하는 말은 마치 거친 성격을 예고하는 저주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늘, 21세기의 현대적 인권 감수성이 아닌

당사자 하갈의 시선으로 말씀을 다시 읽어 내려갈 때,

이 말씀은 저주가 아닌 놀라운 축복으로 다가왔습니다.


1. "돌아가 복종하라"는 생존을 위한 현실적 보호

임산부가 보호자 없이 홀로 사막을 떠돈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게다가 밖에서 아이를 낳는다면 그 아이는 '도망친 노예의 사생아'가 되어

아무런 권리도 갖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하갈을 학대의 현장으로 떠미신 것이 아닙니다.

아이가 족장 아브람의 아들이라는 법적 지위와 상속권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그리고 모자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가장 현실적인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2. "들나귀 같으리라"는 최고의 자유 선언

고대 근동에서 짐을 지는 '집나귀'가 노예의 삶을 상징한다면,

광야의 '들나귀'는 그 누구에게도 길들여지지 않는 완전한 자유와 야성을 상징하는 고귀한 동물이었습니다. 평생 종살이를 했던 하갈에게, "네 아들은 거대한 제국의 지배를 받지 않고,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는 강력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 것"이라는 예언은

노예 여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자유의 축복'이었습니다.


이렇듯 성경은 나의 관점이 아닌, 원독자의 관점으로 읽을 때

비로소 그 본래의 의미를 알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아브람과 사래의 불신앙으로 인해 꼬여버린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은 그 피해자인 하갈과 이스마엘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연약함과 비참함을 '자유'와 '생존'으로 역전시키셨습니다.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 (El Roi)." 하갈의 고백처럼,

오늘 나의 꼬인 상황과 연약함도 지켜보시고 결국엔 선하게 바꾸실 하나님을 신뢰하며 하루를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