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프니 에세이
셰프의 칼질은 정확합니다.
양념도 계량 없이 손 닿는 대로 척척 넣어줍니다.
할머니의 요리도 똑같습니다.
된장찌개에 버섯, 호박, 두부만 넣었는데도 국물이 끝내줍니다.
수십 번 수백 번 같은 요리를 반복한 후에 예술적 경지에 이룰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암묵지 Tacit knowledge라고 말합니다.
학습과 경험으로 체화되어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지식이나 노하우를 이르는 말입니다.
이와 반대의 지식을 명시지 Explicit knowledge라고 하고, 형식지라고도 부릅니다.
문서나 매뉴얼을 통해 외부적으로 표출되어 공유될 수 있는 지식을 말합니다.
직장에선 명시지가 우선입니다.
모든 것이 서류화되고 정형화되고 정량적으로 분석됩니다.
하지만 실질적인 직장 생활의 대부분을 형성하는 것은 암묵지입니다.
겉으로 봤을 때는 정해진 규정대로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고 하지만, 일이 돌아가는 데는 암묵지의 영향이 큽니다.
그러다 보니 신입은 힘듭니다.
규정 자체도 다 못 외운 상태에서 암묵지를 눈치로 알아먹어야 하니까요.
일명 '싸한'느낌이 올 때는 암묵지의 안테나를 사방으로 펴놔야 합니다.
스포츠도 분위기를 타느냐 넘어가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듯이,
삶의 대부분을 보내는 직장에서도 분위기를 따라 가느냐. 낙오하느냐로 성과가 달라집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암묵지를 얼마나 잘 캐치해내느냐에 따라 일이 적성에 맞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어떤 유형인가요?
결론을 낼 수 없는 상황이거나 시간이 해결해 줄 거란 믿음으로 버티거나.
할머니의 된장찌개가 어렸을 때부터 맛있지는 않았을 겁니다.
수십 번이 넘게 된장을 덜어내고 호박과 버섯과 두부를 썰어 넣고 끓이는 과정을 수없이 해오는 동안 나름의 방식을 만들어냈겠지요.
이겨낼 수 있을 겁니다.
시간이 흐르는 만큼 암묵지가 쌓여갈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