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에 기대는 것은 발전을 막는다

생각하는 프니 에세이

by 생각하는 프니

문구점 진열대에는 다양한 감성을 담은 편지지가 쭉 늘어져있습니다. 두세 장을 묶은 편지지나 노트 한 권 분량인 편지지도 있습니다. 연필이나 볼펜으로 따박따박 글을 써서 봉투에 넣고 우표를 사서 붙이고 우체통에 넣습니다. 지금이야 아날로그적인 감성이라는 추억이 됐지만 당시에는 보편적인 소통 수단이었습니다. 지금은 전자메일과 DM이나 SMS가 대세입니다.


지금의 중년 세대는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모두 겪은 세대입니다. 젊은 시절에 인터넷이 출현한 것이 다행이라고 할까요? 빨리 적응할 수 있었으니 말입니다. 물론 처음 나온 인터넷은 로딩 시간이 동글동글 돌아가면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그리고 인공지능으로 세상은 변해가고 있습니다. 이제 인공지능에 적응해야 될 시기입니다. 한데 우리의 젊음은 지나갔고 예전처럼 빠르게 대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윗세대를 보며 결심합니다.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지 말자라고. 그런데 어느샌가 스스로 뒤처지는 선택을 해버린 게 아닐까 놀란 적이 있습니다. 모르는 것이 생기면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고 정리하고 판단해야 하는데 귀찮습니다. 지인이나 주변 사람에게 묻고 듣고 그 사람이 그렇게 했다더라 라는 말만 듣고 그대로 따라 합니다. 맞는지 아닌지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말이죠. 한두 번 그러던 것이 습관이 되면서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라는 말이 입에 붙어버렸습니다.


한 젊은이가 인터넷에 올린 글이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 노인이 키오스크를 사용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이해할 수 없다는 거죠. 화면에 한글로 적혀 있고 두 개 혹은 몇 개 중에서 원하는 것을 누르면 되는데 왜 그걸 못하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나이 들면 친절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생긴 것 같습니다. 나이 들었다고 마냥 누군가의 선의에 기대려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이 발전을 막습니다. 지금의 중년이 해야 할 일은 시대의 변화에 민첩하게 적응하는 일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일은 초행길을 혼자 가는 것이고 생전 처음 보는 일을 처음 시도해 보는 일입니다. 도전을 향한 첫발은 항상 떨리는 법이죠. 어린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할 때 엉덩방아를 찧을까 봐 노심초사하듯이 중년이 새로운 습관을 배우는 것에도 위태로움이 있습니다. 하지만 시도하고 또 시도해봐야 합니다. 머리가 안되고 체력이 안 된다 하지 말고 유연하게 대처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