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프니 에세이
고대 그리스 철학자인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적 지혜로서 '중용'을 설파합니다. 무모함과 회피 사이에 용기가, 탐욕과 금욕 사이에 절제가, 경솔함과 지나친 신중함 사이에 자중이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쉬워 보이지만 막상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옷이 없는 건 아니지만 동창 모임을 위해 백화점에서 옷하나 사는 것은 탐욕일지, 마음에 드는 옷은 없지만(가지고 있는 옷 중에 마음에 드는 옷은 항상 찾기 힘듭니다 ^^;;) 굳이 돈 써서 새 옷 사느니 있는 옷 입고(후줄근한 느낌적인 느낌을 갖고) 가거나 아니면 모임을 취소하는 것은 금욕일까요?
너도 나도 코인이든 주식이든 투자한다니까 여유롭지 않지만 뭐라도 해봐야겠다 싶어 레버리지 투자를 시작하는 것은 경솔함일까요, 아니면 잃는 게 두려워서 아예 투자는 쳐다보지도 말아야지 라는 것은 지나친 신중함일까요?
둘 사이의 경계에서 중용의 한 지점을 콕 찍어내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본성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에 의미를 두고 살아가는지 말이죠. 이 또한 말만큼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중용을 알게 될 때까지 두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우리는 매 순간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똑같은 반복적 선택은 루틴이라는 이름으로 기계적으로 정형화되어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씻고 준비해서 출근하기까지 생각이나 선택이 끼어들 여지는 없습니다. 일어날지 말지, 출근할지 말지를 생각한다는 것 자체는 이미 루틴에서 벗어난 오류니까요.
생각해 보세요.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시간이 과연 있을까요? 하루 24시간 중 순수하게 자신을 위해 쓸 수 있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요? 매일 일기를 쓰는 사람이라면 10분, 15분 정도를 쓸 수 있을 겁니다.
한데 그마저도 없으면 내면을 들여다볼 여유 따위는 단 1분도 주어지지 않는 셈입니다. 생각을 하든 하지 않든 어쨌든 시간은 흘러갑니다. 우리는 점점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난 어느 날, 거울 앞에 선 낯선 나를 보며 화들짝 놀라는 일이 없으려면 매일 자신을 위한 약간의 시간을 허용해 주는 게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