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는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입니다

생각하는 프니 에세이

by 생각하는 프니

"그러니 삶의 의미가 흐릿해질 때는 마음속 작은 불씨를 지켜라. 그 불씨는 처음에는 희미해 보일지라도, 계속 걸음을 옮기다 보면 언젠가 당신 마음 깊은 곳에서 '살아야 할 이유'로 타오를 것이다."

(<<괜찮냐고, 철학이 물었다>> 임재성 지음, 필름)


30대, 40대 미혼 여성이 결혼정보업체와 상담하는 영상을 흥미롭게 봤습니다. 콘셉트인지는 모르지만 여성은 관리를 잘해서 스스로 생각하기에 또래보다 어려 보인다고 확신합니다. 하지만 전문가는 냉정하게 '이모로 보인다'로 팩폭 합니다.


사실 또래에 비해 유난히 어려 보이는 얼굴이 있습니다. 유전적인 요인일 수도 있고 고생을 안 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반대로 가난은 흔적을 남긴다고, 아무리 바르게 살아온 사람도 없이 산 흔적은 지울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40대부터를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지는 나이라고 하죠.


어쩌면 우리는 이 말의 의미를 오해한 게 아닐까요? 중년이 되면 완성형 얼굴이 되어버린다는 고정관념 말이죠. 그래서 굳어진 표정 그대로 끝까지 가는 건가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반대로 생각해야 됩니다. 얼굴의 주름이 차곡차곡 새겨져 갈 때 이것들을 없애려고 할 게 아니라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중년은 완성형이 아닙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무언가를 움켜쥐고 있던 아니든 간에 삶의 지평선 중간쯤에 서 있는 건 똑같습니다. 지나온 시간들을 돌아보고 앞으로의 삶을 계획해야 합니다. 그 계획에는 단순히 생존을 위한 목표도 중요하지만 남은 생의 삶의 의미를 찾는 작업도 병행해야 합니다.


아련한 추억을 떠올리며 젊음을 부러워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마음속의 작은 열정의 불씨를 알아채고 그 불씨를 키워나가는 노력이 삶의 의미를 더하는 일입니다. 일본에서 최고령의 나이로 시인 데뷔를 한 시바타 도요는 <<약해지지 마>>를 출간해 150만 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습니다. 그때 나이가 98세였습니다.


삶의 무게는 절대적이 아니라 상대적입니다. '그깟 일로'라고 치부해 버릴 만한 일이 누군가에겐 천근만근의 추를 매단 듯 꼼짝달싹하지 못할 큰 일일수도 있습니다.


버텨내야 할 짐의 크기도 제각각입니다. 그러니 내 짐만 크고 무겁다고 투덜댈 일이 아닙니다. 무게에 짓눌리지만 말고 내면을 들여다보고 작은 불씨를 키워가는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갔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