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구

2023 아르코문학창작기금 선정작품

총구


우재(愚齋) 박종익


오늘 나는 여지없이 죽었다

탕, 한 방 맞고 분명 쓰러진 것이다

붉은 피가 낭자하고, 정신은 아득했다

아침에 내가 버린 플라스틱 검은 연기가

말하자면 방향을 모르고 날아다니는 총알이 되었다

말 한마디 무서운 세상에

무심코 쏘아버린 플라스틱 총알이

결국, 나를 겨누고 달려들었다

세상의 모든 방아쇠는 믿음이 안 간다

총부리에 검은 연기가 자라나

영원히 총구의 방향을 알아차릴 수 없고

빙하를 녹아내리고, 종잡을 수 없는

태풍은 종횡무진 몰려와 세상을 덮친다

총구를 떠난 검은 총알이 펄펄 날뛰다가

지구 한 바퀴를 돌아와

언제 내 뒤통수를 겨누었는지 모르겠다

갈라진 입술이 날름거리는

저 검은 혓바닥이 가지를 내고 잎을 펼치며

해변을 휩쓸며 세상의 지붕을 집어삼킨다

미끄러운 비누가 권총이라면

플라스틱은 장총이거나 기관총이다

내가 겨누고 나아가야 할 생의 방향을

알 수 없듯이 이를테면

아무렇게나 버린 플라스틱이 천년만년 자라고 자라나서

오대양 어느 바다에 흉악범으로 떠돌 것이다

이제는 검은 연기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총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더 두렵고 살 떨리는 일이다

나는 이제 죽은 목숨이다

이전 06화도마뱀의 이별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