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구
우재(愚齋) 박종익
오늘 나는 여지없이 죽었다
탕, 한 방 맞고 분명 쓰러진 것이다
붉은 피가 낭자하고, 정신은 아득했다
아침에 내가 버린 플라스틱 검은 연기가
말하자면 방향을 모르고 날아다니는 총알이 되었다
말 한마디 무서운 세상에
무심코 쏘아버린 플라스틱 총알이
결국, 나를 겨누고 달려들었다
세상의 모든 방아쇠는 믿음이 안 간다
총부리에 검은 연기가 자라나
영원히 총구의 방향을 알아차릴 수 없고
빙하를 녹아내리고, 종잡을 수 없는
태풍은 종횡무진 몰려와 세상을 덮친다
총구를 떠난 검은 총알이 펄펄 날뛰다가
지구 한 바퀴를 돌아와
언제 내 뒤통수를 겨누었는지 모르겠다
갈라진 입술이 날름거리는
저 검은 혓바닥이 가지를 내고 잎을 펼치며
해변을 휩쓸며 세상의 지붕을 집어삼킨다
미끄러운 비누가 권총이라면
플라스틱은 장총이거나 기관총이다
내가 겨누고 나아가야 할 생의 방향을
알 수 없듯이 이를테면
아무렇게나 버린 플라스틱이 천년만년 자라고 자라나서
오대양 어느 바다에 흉악범으로 떠돌 것이다
이제는 검은 연기가 두려운 것이 아니라
총구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더 두렵고 살 떨리는 일이다
나는 이제 죽은 목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