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걸작
제20회 전국 호수예술제 대상 수상
by 바다시인 우재 박종익 Oct 10. 2023
어머니의 걸작
우재(愚齋) 박종익
어머니는 갯벌을 그리는 화가셨다
뻘배*로 한 획 한 획 덧칠할 때마다
그림은 질퍽한 꼬막 냄새로 진동했다
하루에 딱 두 장, 어머니의 화선지는 흰색이 아니었다
신작로처럼 매끈하고 긴 획과
푹푹 허벅지로 밀어내는 거친 붓끝은
풀리지 않는 암호, 거대한 추상화였다
정거장도 쉼터도 나무 한 그루 없는
끝없는 평원에서의 막막한 몸부림은
날 것을 얻으려는 창작의 고통이었다
갈고리로 바닥을 쓸어 담으면
갯내로 풀풀 돋아나는 검푸른 바다 화선지
구석구석 엇갈리지 않도록
어머니는 붓을 놓지 않으셨다
무채색으로 담아낸 캔버스 위에
수평선 언저리 노을빛으로 화룡점정
채색화로 풀어 놓으시는 어머니
썰물이 선물로 안겨 준 화선지 위에서
어머니는 붓을 들고
그 많은 날을 밀물에 그림을 파셨다
작품 한 점 팔려나갈 때마다
배고픔은 밀물로 차오르고
밀린 이자를 썰물로 쓸려 보내면서
나의 등록금을 선착장에 고봉으로 쌓아 올리셨다
그렇게 유명한 화가는 아니었지만
수평선 너머로 팔려 간 어머니의 그림은
유럽에도 미국에도 물살 일으키며 건너가고
지금은 남극과 북극에도 전시 중이다
어느 바다 어느 하늘가,
일몰 수평선에 찬란하게 걸린 어머니의 작품이
내 안에 노을빛으로 걸리고
어머니의 그림을 올려다보며
가만히 잠이 들곤 한다
*뻘배 : 우리나라 남해와 서해에서 꼬막을 채취하기 위해 갯벌에서 타는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