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평선

《수평선에 새긴 이름》

수평선


우재(愚齋) 박종익


물은 홀로 투명해지기 위하여

푸른 바닥을 드러낸다

투명은 고요의 또 다른 이름

고요가 흩어질 때

웅덩이는 강이 되고

강은 바다로 기울어

세상의 무게를 삼킨다


받아들이지 못하면

흐르지 못하듯

흘러야만 제 얼굴을 갖는 물

그 얼굴은 이미

푸른 하늘을 품고 있다


푸른 바다와 파란 하늘

서로 맞닿아 보이는 건

가느다란 수평선뿐


하늘은 바다로 스며들고

바다는 하늘로 번져가

경계라는 이름으로 흔들리고

경계는 들숨과 날숨으로 파도치며

고요를 찢는다


바닥은 투명으로 내려앉고

투명은 고요로 기어오르다가

다시 무너지는 바다


수평선은 묻는다

누가 하늘이고 바다인지

바다는 하늘 속으로

하늘은 바다 속으로


결국 파도는

경계조차 사라진

푸른 몸의 멱살을 잡고

빛의 경계를 따라

그 깊이를 감춘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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