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하 장례식

제19회 국제 지구사랑 작품공모전 동상 수상

빙하 장례식


우재(愚齋) 박종익


그린란드에서 날아온 부고장을 받았습니다

실종된 그녀의 행적은 알 수 없었고

그 흔한 증명사진 한 장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북반구 얼음벼랑이었던가요

일만 년 하얀 눈물을 증인으로 불러온

매머드*의 슬픈 장례식에 갑니다

얼음관 속에 누워있는 시조새가

말이라도 붙이면 새파란 입술에서

흘러나오는 노래

얼음산이 흰 이빨을 갈며 부르는 장송곡이

산맥을 무너뜨리고 있습니다

동맥을 자르고 봉우리를 깨뜨리며

속살을 파헤치는 일은

도굴범이나 하는 짓이라고요

가문비나무 아래서 늑대가 울고

붉은 보름달 차오르면

칼바람이 발톱을 세우고, 집 나온 별들이

둥근 이 땅에 잠들겠지요

빙하도 야수의 눈을 뜨고 앙갚음이란 단어를

기억할까요

이글루를 도둑맞은, 저 오 갈 데 없는 북극곰이

오로라의 희미한 증언을 실마리로

빙하 조각배를 타고 범인을 찾아 나섭니다

수십 번도 더 그려보는 범인의 몽타주

천 개의 눈빛을 가진 짐승의 머리

대왕고래보다 더 큰 몸통에

가시 지느러미를 붙여 보기도 하지만

도대체 꼬리가 몇 개인지 알 길이 없네요

분명 눈 폭풍보다 더 차가운 심장과

수백 개의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범인의 모습은 점점 더 무섭고

고약한 얼굴로 변해갑니다


*매머드 : 빙하기에 멸종된 긴 코와 긴 어금니, 털로 덮인 코끼리와 비슷한 대형동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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